과거 인수합병(M&A)이나 계열 분리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좀처럼 이름을 바꾸지 않았던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사명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사명에서 주력 사업을 빼고 미래 가치를 담는 특징이 있다. 업계에서는 보수적인 국내 대기업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사명이 모호해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종합화학은 최근 사명을 ‘한화임팩트(Hanwha Impact)’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주력 사업인 ‘화학’을 사명에서 뺐다. 한화종합화학은 한화(000880)가 2015년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면서 간판을 바꿔 달았는데, 6년만에 또 변경한 것이다. 한화임팩트는 새 사명에 ‘기술 혁신을 통해 인류와 지구에 긍정적인 임팩트(Impact·영향)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끌겠다’는 비전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화종합화학이 지난 7일 한화임팩트로 사명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한화임팩트 로고./한화임팩트 제공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기존 화학 사업에 더해 수소, 모빌리티 등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을 중심으로 ‘임팩트 투자’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등 기존 화학 사업은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동시에 수소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와 모빌리티, 융합기술 등 혁신기술에 대한 임팩트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SK(034730)그룹의 석유화학 계열사 SK종합화학도 이달 1일 ‘SK지오센트릭(SK geocentric)’으로 사명을 바꿨다. 새 사명에는 ‘지구와 환경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겠다’는 비전을 담았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사명 변경은 SK종합화학 출범 후 10년 만이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096770)은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회사 정체성을 탄소 사업에서 그린 중심 사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도 이에 발맞춰 사명을 변경하고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공격적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한화종합화학과 SK종합화학 모두 사명에서 화학이라는 기업의 주력 사업을 빼는 대신 회사가 지향하는 미래 비전과 친환경 사업을 중심으로 한 ESG 경영 기조를 새 사명에 담았다.

SK건설도 지난 5월 ‘SK에코플랜트’로 사명을 바꿨다. ‘건설업을 넘어 아시아 대표 환경기업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LG상사는 LX그룹에 편입되면서 7월부터 사명을 ‘LX인터내셔널’로 변경했다. LX그룹 관계자는 “상사라는 사명이 트레이딩만 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해 대체로 사명에서 상사를 빼는 추세”라고 했다.

기아 서울 양재 본사 사옥.

기아(000270)는 1월 기존 사명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뗀 ‘기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사명 변경은 1990년 기아산업에서 기아차로 바꾼 지 31년 만이다. 기아는 사명 변경을 계기로 기존 자동차 제조 중심의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재계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찾는 대기업들이 신사업에 진출하면서 기존 사명을 버리고 확장성이 있는 사명으로 변경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사명에만 ESG 경영을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사명에 새로운 사업 비전을 반영하는 것은 좋은데 주력사업은 유지하면서 사명만 바꿔 친환경 기업인 척 홍보해선 안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