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3월 경영에 공식 복귀한 이후 첫 계열사 대표 인사를 단행하면서 재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인사는 철저히 전문성에 기반해 전년 대비 ‘관리’ 측면을 강화했는데, 이를 두고 재계는 김 회장이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009830) 사장의 신사업에 안정적인 추진력을 더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26일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를 발표했다. 한화시스템(272210) 방산부문장을 맡고 있는 어성철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됐고,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 대표이사에는 폴리올레핀(PO) 사업부장인 남이현 부사장이 승진 임명됐다. 김희철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대표는 한화종합화학 대표이사에 내정됐고, 이구영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 대표이사가 큐셀부문 대표이사로 이동한다. 한화저축은행 대표이사에는 홍정표 한화생명 전략부문 부사장이 임명됐다.

김승연(왼쪽) 한화그룹 회장과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한화그룹 제공

이번 인사는 철저히 ‘능력주의’에 기반했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내정된 대표이사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로, 어 대표 내정자만 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엔진사업본부장, 한화시스템 경영지원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위성통신사업, 무인·스마트방산 등 신사업 분야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한 인물이다.

나이는 공교롭게 모두 1964년생이다. 지난해 계열사 대표 인사에서 총 10명 중 3명을 1970년대생으로 발탁해 CEO 평균 연령을 낮춘 것과 비교하면 파격 발탁은 없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1978년생 여성 대표(김은희 한화역사 대표)가 탄생하는 등 급격한 세대교체가 이뤄졌는데, 이번 인사는 모두 1964년생인 데다 대부분 이전부터 대표를 해왔던 이들”이라며 “변화보다는 안정적 관리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김 회장이 관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은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추진하는 신사업에 안정성을 더해주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회장은 지난해부터 ㈜한화(000880)의 전략부문장을 겸임하며 에너지·화학부터 우주산업까지 그룹 전반의 미래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특히 그가 이끄는 한화솔루션은 지난해부터 가상발전소 사업 기반 소프트웨어 업체인 젤리와 수소 고압탱크 업체 시마론, OLED 소재 기술 업체인 더블유오에스 지분을 잇따라 인수했다. 올해 역시 프랑스 재생에너지 개발업체 RES를 인수한 데 이어 삼성전기(009150)의 와이파이 모듈 사업 인수까지 검토하며 인수·합병(M&A)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되 성장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안정성을 더해줄 인사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는 수소와 재생에너지, 방산, 우주항공사업 등 다른 그룹과는 차별화된 길을 걷고 있는 만큼 기존 사업을 탄탄하게 유지하며 나아가야 한다”며 “이번에 내정된 대표이사들이 각 사업 실력통으로 꼽히는 만큼 김 사장과 함께 그룹 경영의 내실을 다지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3년 만에 한화종합화학으로 복귀한 김희철 대표는 김 사장의 ‘태양광 멘토’로 불릴 만큼 오너 일가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 역시 “이번 인사는 지금 사업 방향이 옳다는 전제하에 사업을 더 성장시키는 구체적 방법을 찾아가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서산에 있는 한화 대산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모습./한화 제공

이번 인사가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이른 시기에 나왔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화는 인사를 앞당긴 데 대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중장기 전략 수립에 탁월한 인사를 대표이사로 내정해 지속가능한 성장 토대를 구축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신임 대표이사를 빠르게 임명한 만큼 다른 그룹보다 먼저 내년도 사업 전략 마련을 시작할 수 있고, 그만큼 기존 사업과 신사업 모두 탄탄하게 준비할 수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이 이번 인사를 계기로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14년 배임 등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잠시 물러났다가 올해 3월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건설 등 3개 핵심기업에 미등기 임원으로 공식 복귀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식 대외활동은 지난달 40년 가까이 친분을 이어온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을 만난 것이 유일하다.

다만 김 회장의 활동 재개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김 사장을 비롯한 아들들의 그룹 내 역할이 커지고 있어 김 회장의 대외 활동이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