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부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A사는 최근 외국 국적 선사와 1년 장기 운송 계약을 맺으면서 지난해의 두 배의 운임료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운임이 대폭 오르고도 목표했던 1년치 선복의 60%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운임을 더 지급하고라도 선박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물건을 더 실을 공간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A사 관계자는 “음식점에서 값은 두세 배 올리고 주문한 메뉴를 절반만 준다고 생각해보라”며 “손님 입장에서 화를 내야 할 상황인데도 우리는 가게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자동차 타이어·부품업계가 반도체 품귀현상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더해 ‘해운대란’까지 겹치며 삼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해상 운임이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충분한 선복량(적재 능력)을 확보하지 못해 고충이 크다. 해운대란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원재료를 공급받고 제품을 내보낼 수출길이 모두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항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빼곡히 쌓여 있다. /연합뉴스

◇ ‘산 넘어 산’ 간신히 컨테이너 구해도 선적 지연

엔진 부품 업체 B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컨테이너 구하기가 어려워진 지 오래”라며 “컨테이너와 배를 구해도 싣지 못해 다음 항차로 밀리면 납기를 지키기 어려워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품이라도 가벼우면 항공편으로라도 실어 보낼 텐데, 쇳덩이를 실어 나르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말했다. 구하더라도 배를 구하기 어렵고, 선적 역시 지연되기 일쑤라고 한다.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의 장치율(컨테이너 보관량)이 90%를 웃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출 비중이 큰 타이어업계에선 선복 부족으로 공장 운영을 중단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는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대전공장과 금산공장을 멈춰 세웠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선편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공장가동을 일시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는 올해 1분기 매출 1조6168억원 가운데 국내 매출은 11.4%(1850억원) 수준이다. 90% 가까운 물량이 수출된다는 의미다. 특히 유럽 매출 비중이 34.8%(5630억원), 북미가 25.8%(4170억원)로 크다. 유럽과 북미 서안은 선복 부족으로 1년새 컨테이너선 운임이 각각 3~6배가량 뛴 지역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륙횡단철도까지 활용해 수출에 나섰지만 물량을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그래픽=송윤혜

다른 회사 사정도 마찬가지다. 금호타이어(073240)는 올해 1분기 매출 5856억원 가운데 70%(4101억원)를, 넥센타이어(002350)는 매출 4938억원 가운데 82.6%(4077억원)를 해외에서 벌었다.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선박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운임까지 너무 올라 전체 실적에 부담을 줄 정도”라며 “업체들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 제품가격을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철강재나 고무 등 원자재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업체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철광석값이 지난해보다 2배가량 뛰면서 철강재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타이어 원료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천연고무 가격도 1년새 90%가량 올랐으며 이외 주요 재료인 합성고무와 카본블랙도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 다목적선까지 띄워보지만… 외국적 선사, ‘중국 먼저’

선복 부족과 해상 운임 급등이 장기화되면서 해운사에 대한 화주들의 불만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해운업계는 물리적으로 배가 없다는 입장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항만 적체가 심해지면서 선박이 지연되고, 그만큼 옮길 수 있는 물량도 줄어드는 구조다.

덴마크 해운분석업체 씨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선박의 운항 지연으로 줄어든 선복량은 21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였다. 전세계 1만8000TEU급 이상 컨테이너선들의 선복량이 총 200만TEU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운항 지연으로 전세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지난 4월 한 달간 모두 선대에서 빠진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운업계에선 최근 HMM(011200) 등이 다목적선(MPV)까지 투입하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다목적선은 석유화학설비, 발전설비와 같은 초대형 특수 화물을 주로 나르는데, 필요한 경우 컨테이너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오죽하면 특수선까지 투입하겠느냐”며 “갖고 있는 배는 다 운항 중이고, 시장에서 더 빌릴 배도 없다”고 말했다.

외국적 선사들의 ‘한국 패싱(passing)’도 문제다. 항만물류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부산항에 온 외국적 컨테이너선은 6411척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적다. 코로나 사태 전후의 차이도 있지만, 선대 편성이 중국으로 쏠린 탓이다. 선사들이 물량도 더 많고, 운임도 더 비싼 중국을 선호하는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지난달 외국적 선사들과 면담, 국내 선적 공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요청’ 외에 다른 유인책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물류망이 정상화돼야 해결될 문제인데 연쇄적으로 영향이 미치는 만큼 어느 한 곳이 해결돼 끝날 문제가 아니다. 당장 코로나 확산으로 준(準) 폐쇄상태인 중국 선전시 옌텐항의 영향으로 주변 서커우항이나, 난샤항까지 물류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 중국~유럽·미국 노선의 선박 지연이 왕복 기준 일주일가량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