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세계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배터리 원료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향후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전을 펼치기는커녕 힘들게 확보한 자원마저 매각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006400)가 GM, BMW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맡은 데 이어 SK이노베이션(096770)은 포드와 손을 잡았다. 이들 완성차 기업이 내세운 전기차 목표치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배터리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사용량은 LG에너지솔루션(31.3%)이 가장 많았고, 삼성SDI(3위·10%), SK이노베이션(5위·9.6%)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세계 전기차 절반이 한국 배터리를 쓰는 셈이다.

코발트 금속 덩어리./블룸버그

한국 배터리 기업의 기술 경쟁력은 입증됐지만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료 공급망은 취약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배터리 원료 자급률이 0%에 가깝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배터리 원료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81%에 달한다. 산화코발트와 황산망간은 각각 87.3%, 100%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김민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의 원료 소재에 대한 높은 지배력은 한국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원료 수급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자원은 국가의 정치·외교 문제와 연관돼 있는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리튬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사천성의 경우 직접 광산 개발을 주도하는 등 정부가 국가 산업으로 배터리 원료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며 “기업도 노력해야겠지만 결국 원료 확보는 정부가 나서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자원 외교는 이명박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했으나 이 사업에서 부실이 발견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자원 개발을 적폐로 취급하고 있다. 자원 외교를 도맡아야 할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지난해 기준 부채가 6조9000억원에 달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세계 3대 니켈·코발트 생산 광산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광산 지분(33%)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니켈과 코발트는 이전부터 차세대 원료로 꼽혀온만큼 정부가 주도하고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갖고있는 것을 팔겠다니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배터리 원료 대부분을 중국 등 해외에 의존하는 현 상황은 향후 한국 배터리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한국 배터리 기업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배터리 원료를 무기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적 배터리 기업인 CATL은 기존 중국 내수 업체로 인식됐지만, 1분기 기준 세계 4위로 뛰어오르며 한국 배터리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은 전세계 코발트의 60%를 보유하고 있는 콩고에서 이미 40%의 물량을 확보한 상황”이라며 “우리 정부도 필요한 원료와 물량을 정확히 따져 자원 확보 전략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자원 외교가 필요한 것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광물 자원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새로운 자원 확보가 어렵다면 정부는 기존에 투자된 광산이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민간 역시 광물 개발 투자가 위축돼 있는만큼 이를 되살릴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