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신형 그랜저를 구입한 고원준(46·남)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도로에서 차를 천천히 몰고 있는데, 갑자기 경고음이 울리면서 차가 서버린 것이다. 차 앞쪽에 설치된 센서가 장애물을 잘못 인식한 탓이다. 인터넷 동호회엔 고씨와 같은 현상을 겪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제조사인 현대차(005380)는 이 문제를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했다.
지난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구매한 장민희(55·여)씨는 대기 상태에서 엔진이 꺼지는 에코 시동·정지 기능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이 기능은 차를 세우면 시동이 꺼졌다가 가속페달을 밟으면 다시 시동이 걸려야 정상인데, 장씨 차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종종 시동 버튼을 다시 눌러줘야 한다. 장씨는 서비스센터에서 파워트레인 컨트롤 유닛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라는 통지문을 받았다.
최근 자동차에 소프트웨어(Software) 비중이 높아지면서 잔고장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과거 자동차 고장은 기계·물리적 결함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전자·전기 장비에서 고장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른바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늘면서 새롭게 발생한 문제들이다.
10일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리콜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발생한 리콜 및 무상수리는 총 367건(무상수리 242건, 리콜 125건)으로, 이 가운데 172건(무상수리 132건, 리콜 40건)이 소프트웨어 관련이다. 전체 무상수리·리콜의 43.3%다. 무상수리는 안전과 큰 관련이 없는 결함, 리콜은 안전과 관련이 있는 결함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5년 전인 2018년 1~5월의 리콜·무상수리는 154건이 있었는데, 소프트웨어 관련은 19건(12.3%)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관련 문제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주도로 SDV 전환에 힘쓰고 있는 현대차는 올해 있었던 무상수리 48건 중 33건(68.8%)이 소프트웨어 문제였다. 리콜은 14건 중 5건(35.7%)이었다.
소프트웨어 무상수리나 리콜이 가장 많았던 차는 작년 11월 출시된 준대형 세단 그랜저(7세대)다. 올해 들어 모두 12건의 무상수리가 있었는데, 10건(83.3%)이 소프트웨어 문제로 나타났다. 리콜은 2건 모두 소프트웨어 때문이었다.
수입차 역시 소프트웨어 결함이 늘어나는 추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5월까지 발생한 57건(무상수리 42건, 리콜 15건)의 무상수리·리콜 중 35건(61.4%)이 소프트웨어 문제로 집계됐다. 벤츠는 5년 전 같은 기간에는 소프트웨어 문제가 없었다. BMW는 올해 5월까지 22건의 리콜이 있었는데, 14건(63.6%)이 소프트웨어 문제였다. 무상수리는 전체 16건 중 6건(37.5%)이 소프트웨어 부분이었다.
소프트웨어 문제는 유·무선 업데이트, 업그레이드 등으로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문제 해결에 걸리는 시간도 기계·물리적인 고장보다 상대적으로 짧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문제는 초기 발견이 어렵고 기계적 결함에 비해 예측이 어렵다.
업계는 제조사가 소프트웨어 문제와 원인을 얼마나 빠르게 찾고, 해결할 수 있는지를 경쟁력으로 본다. 과거에 엔진 성능, 승차감, 연료 효율을 높이는 것이 자동차 기술력의 척도였다면 SDV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문제 해결 역량이 제조사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는 개발 특성상 항상 여러 문제가 있고 예측하기 어려워 이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자동차 회사들의 과제”라며 “과거 기계적 고장보다는 수리가 쉽지만, 소프트웨어 고장이 잦으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