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지속된 반도체 대란이 완성차 업체의 수익성을 대폭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용 반도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완성차 업체는 지난해부터 생산 공장을 잇달아 멈춰 세웠는데, 이런 생산 차질이 결과적으로 완성차 업체의 실적에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 생산 차질은 국내외 업체 가릴 것 없이 모든 업체들에 영향을 미쳤는데, 완성차 업체는 이를 명목으로 할인을 대폭 축소하고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챙겼다.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연간 수익이 증가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실적 호조세가 지속되고 있다. 1분기 현대차(005380)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4% 증가해 2조원에 육박했고, 기아(000270)의 영업이익은 무려 50% 증가한 1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서울에 있는 현대차 매장 모습./연합뉴스

얼마나 실속 있게 장사했는지 보여주는 영업이익률을 보면, 현대차는 6.4%, 기아는 8.8%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는 5% 안팎의 영업이익률 목표를 내세웠고, 세타2 엔진 리콜 비용이 반영됐을 당시에는 영업이익률이 2%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그런데 최근 수익성이 높은 모델 판매가 늘어나는 가운데,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 기아는 올해 1분기 실적과 관련해 “고수익 차량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인센티브 축소를 통한 ‘제값 받기’ 가격 정책을 통해 평균 판매가격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할인을 축소한 데 이어 신차 가격도 대폭 인상했다. 디자인과 성능을 개선한 신차뿐 아니라 ‘코나’, ‘아반떼’, ‘모하비’ 등 연식 변경 모델을 출시하면서도 상품성을 개선했다며 가격을 수백만원씩 올렸다. 새로운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전기차 가격은 더 높다.

해외 업체 중에서는 공격적인 가격 인상에 나선 테슬라의 이익이 대폭 증가했다. 테슬라는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1분기의 두 배 수준인 187억달러, 순이익은 7배 급증한 33억달러를 기록했다. “테슬라 전기차 가격은 ‘시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테슬라는 가격을 잇달아 올렸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매출원가율이 80% 수준인 것과 달리 테슬라는 1분기에 이를 70% 수준으로 낮춘 것도 수익성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테슬라 공장 모습./연합뉴스

완성차 업체들이 일제히 자동차 가격을 인상한 것은 부품과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익이 증가하고 수익성이 개선된 것은 결과적으로 늘어난 원가보다 더 큰 폭 제품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는 부품을 납품받는 과정에서 협력 업체에 대해 협상 우위를 갖는데, 최근 자동차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판매 시장에서도 우월적인 지위를 갖게 됐다”며 “늘어나는 원가 부담은 최소화하고, 판매 가격은 더 많이 올리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이번 사태를 틈 타 투자 실탄을 챙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기차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며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