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자동차 생산 차질이 장기화되면서 인도 거부차, 즉 재고차의 인기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고 직후 소비자가 인도를 거부해 재고로 남은 재고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업체에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최근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이 만성화되면서 재고차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연말 보조금 소진 우려가 큰 전기차의 경우 재고차 수요가 크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가 지난 2월부터 사전계약을 실시한 ‘아이오닉 5’의 재고차 구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산발적인 셧다운이 이뤄진 데다 반도체 수급난까지 겹치면서 생산 일정이 크게 지연되자 소비자들이 재고차 구매에 나선 것이다. 지난 2월 ‘아이오닉 5’를 사전계약한 직장인 김모씨는 “아직 차량을 받지 못해서 영업점을 찾아 비슷한 옵션의 재고차를 문의했는데, 요즘에는 재고차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지난 2월 사전 계약을 시작한 첫 전기차 '아이오닉 5'./조선비즈 DB

재고차는 구매하기로 한 소비자가 인도를 거부하면서 발생한다. 주문 생산 방식이 아니라 인기 옵션 수요를 파악해 미리 물량을 생산해 판매하는 현대차는 출고 전 계약이 취소되는 차량을 다음 순번 대기자에게 넘긴다. 하지만 출고 후 구매자의 변심이나 품질 이상으로 차량 등록 전에 소비자가 인도를 거부하는 경우 차량을 재점검하는 ‘리워크(rework)’ 과정을 거쳐 재고차로 등록한다. 재고차는 리워크 과정에서 확인된 요인에 따라 할인율이 결정된다.

주문 생산 방식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수입 브랜드 역시 재고차의 수요가 많다. 수입차 업체는 계약 취소가 발생하면 이미 수입해 들여온 물량을 반품할 수 없기 때문에 PDI(차량 출고 전 검사) 센터에 쌓아둘 수밖에 없다. 이렇게 쌓인 재고차는 이전에 구매하기로 했던 소비자가 선택한 옵션이 적용돼 있지만, 최장 1년에 달하는 대기 기간 없이 바로 차량을 인도 받을 수 있어 이를 감수하고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수입차는 여러 딜러와 계약을 해놨다가 차량을 받은 후 나머지 딜러사와는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 천안에 사는 이모씨는 “신차를 인도 받으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해서 딜러사를 통해 재고차를 구매했다”며 “계약 직후 바로 차량을 인도받은 데다 가격 할인도 받아 만족한다”라고 했다.

재고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재고차를 구하는 팁이 공유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업체 전산망에는 매월 1일 재고차가 등록되기 때문에 월초에 재고차를 알아보는 것이 좋고, 최소 3개 영업점에 문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생산 월에 따른 재고 리스트는 월초에 공지되지만, 예상치 못한 인도 거부로 발생하는 재고차는 정해진 시점 없이 바로 공지된다”고 말했다.

한 영업점 관계자는 “길어진 대기 기간을 참기 어렵거나 구형 모델의 새 차를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다면 영업장에 전시됐던 차량이나 신모델 출시·연식변경 때문에 재고로 남은 차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