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7월 22일, 프랑스 파리 소식지 ‘르 쁘띠 주르날’은 파리에서 북서쪽 루앙까지 125㎞ 구간에서 열린 ‘말 없는 마차 경주’ 소식을 실었다. 사람이 직접 달리거나 말이나 소 등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증기·전기·가솔린 등 다양한 연료를 동력원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참여하는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였다. 이 경주에서 이긴 주인공에게 주어진 상금은 5000프랑에 달했다.

질주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고, 참가자의 우열을 가려보자 시작한 이 경주는 수많은 구경꾼을 모았고 흥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경주를 통해 자동차가 1000㎞ 이상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고, 물을 끓여 동력을 내는 증기기관 대신 가솔린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류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모터스포츠의 시초로 여겨지는 '파리-루앙' 자동차 경주 모습(왼쪽)과 이 소식을 전한 파리 소식지 '르 쁘띠 주르날'./위키피디아

참가자는 물론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자동차 경주는 이후 발전을 거듭했다.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대거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차의 속도와 내구성을 시험하기 위해 장거리 경주나 힐 클라임(정해진 비탈길을 달려 시간을 재는 스피드 경기), 서킷 경주를 열기 시작했고, 1910년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자동차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자동차 경주가 시작된 초기에는 엔진 배기량에 대한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대 경주용 자동차에는 거대한 엔진이 장착됐다. 프랑스 부가티의 타입 18 ‘갸로스’(1912년)는 최고 속력 169㎞/h를 내는 4기통 엔진을 얹었는데 배기량이 5072cc였고, 164㎞/h까지 달릴 수 있었던 이탈리아 피아트 ‘S74’(1911년)의 배기량은 무려 1만4137cc에 달했다.

부가티가 지난 2014년 중국 베이징모터쇼에서 공개한 '베이론 블랙 베스'(왼쪽) 모습. 이 모델은 1912년 '몽 방투' 힐 클라임에서 우승한 '타입 18'(오른쪽)의 오마주 모델이다./부가티 제공

◇ 유럽·미국 브랜드, 경주용 자동차 제작해 기술력 과시

이후 차량 무게와 엔진 용량 등 동등한 조건에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면서 지금과 비슷한 모터스포츠의 발판이 마련됐다.

특히 1920년대는 모터스포츠가 본격적으로 꽃 핀 시기였다. 그전까지는 기술력을 입증하기 위해 일반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를 경주에 내보냈다면, 이때부터는 첨단 기술을 반영한 경주용 자동차를 생산하고, 이 기술을 일반 주행용 차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 모터스포츠를 통해 실린더별 다중 밸브와 스파크 플러그,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 전륜구동 방식 등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고 입증됐다.

덕분에 자동차 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경쟁자보다 더 빠르게 달리고자 하는 욕구가 속도를 끌어 올리는 엔진 기술 개발로 이어졌고, 차체 무게를 최소화하거나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차체를 유선형으로 다듬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에 막대한 투자가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설계로 230마력이 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강력한 레이싱 모델 ‘SKK’(1929년)가 등장하고, 최고 속력이 200㎞/h에 육박하는 알파 로메오 ‘P2’가 1925년 열린 첫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도 이 시기다.

1925년 열린 첫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알파 로메오의 'P2' 모습./위키피디아

초기에는 프랑스와 영국 브랜드가 자동차 경주를 석권했지만, 1930년대 들어 이탈리아 브랜드가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알파 로메오는 무솔리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위세를 떨쳤고, 마세라티 가문의 기술자 알피에리는 수제 경주용 차를 다수 선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브랜드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일 정부가 자동차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나서면서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우니온이 빠르고 강력한 경주용 자동차를 대거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 미드십 슈퍼카·그랜드투어러의 진화

세계 경제를 강타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모터스포츠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1950년대는 경주용 차와 일반 자동차가 성능부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차별화되기 시작한 시기인데, 자동차 경주를 통해 연료 분사 방식과 브레이크 성능을 확인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기술 노하우를 일반 차량에도 도입하면서 도로 주행 차량의 성능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디스크 브레이크다. 이 시기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브랜드는 독일 포르셰와 이탈리아 페라리, 영국 애스턴 마틴과 재규어 등이다.

1987년 시속 200마일을 넘어 슈퍼카의 상징이 된 페라리 'F40'./페라리 제공

내구 레이스 ‘르망 24’에서 총 일곱번 우승하며 영국 자동차 업체 중 가장 성공적인 모터스포츠 역사를 자랑하는 재규어는 1951년 항공기 엔지니어 말콤 세이어를 참여시켜 항공학 이론과 경험을 접목한 ‘C-타입'을 선보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도 경주용 차의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많은 자동차 제작사가 엔진을 차량 앞에 장착했지만, 차 중간이나 뒤에 엔진을 장착해 중량 배분을 개선하기 시작한 것이다. 엔진을 차량 중간이나 뒤에 배치하면서 조종력과 접지력은 훨씬 개선됐고, 관객들은 더 다이내믹한 모터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랜드투어러(GT·장거리 주행을 위해 설계된 고성능 자동차)의 성능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이 시기다. 페라리와 이탈리아 최고의 슈퍼카 브랜드로 경쟁하는 람보르기니가 최초의 미드십 슈퍼카 ‘미우라’(1966년) 공개했고, 포드는 355마력의 ‘머스탱 GT500’을 생산했다.

극한의 경쟁을 벌이던 모터스포츠는 1970년대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대부분 자동차 브랜드가 상당한 속력을 내는 경주용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상향 평준화가 이뤄지면서 자동차 경주에서 출력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동차의 출력·토크를 높이면서 연비를 향상시키는 ‘터보차저’ 기술이 발전했다.

◇ 사이드미러·오토기어·사륜구동… 경주장에서 개발돼 양산차에 적용

모터스포츠 대회 규정은 역사를 이어오면서 안전과 환경 규제를 강화해왔는데, 까다로워지는 규정에 맞추기 위해 차체와 엔진을 진화시키면서 다양한 신기술이 쏟아졌다. 지금 양산차에 기본으로 적용되는 사이드미러와 룸미러, 세미 오토기어, 디스크 브레이크, 사륜구동(AWD) 기술은 물론, 엔진에서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트윈 터보차저와 인터쿨러 역시 모터스포츠를 통해 개발한 기술의 산물이다.

오늘날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다수 유럽, 미국 자동차 브랜드의 역사가 곧 모터스포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비교해 역사가 짧은 현대차그룹도 모터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현대차(005380)는 2019년 세계 최고의 레이싱 대회로 꼽히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 사상 처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현대차가 처음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지 21년 만이었다. 현대차는 연간 1000억원 이상을 WRC 팀 운영에 투자해왔다.

◇ 모터스포츠 종류만 수백여개…막대한 경제적 효과 창출

모터스포츠에선 자동차의 성능뿐 아니라 숙련된 드라이버의 주행 실력, 탄탄한 팀 조직력 등 복합적인 요인이 기록에 영향을 미친다. 고도의 기술력과 상당한 투자를 감내할 수 있는 지구력을 한눈에 시험해볼 수 있는 종합 스포츠인 셈이다.

전 세계 모터스포츠 경기는 세계 최고속 자동차 경주인 ‘포뮬러 원’부터 24시간을 달리며 자동차의 내구성을 겨루는 ‘르망 24’와 전세계 랠리의 종합판인 ‘WRC’,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다카르 랠리’까지 수백 개에 이른다. 포뮬러 원이 서킷에서 극한의 속도 경쟁을 펼치는 게임이라면 WRC는 전 세계 산간 도로·진흙탕·자갈밭·눈길 등 극한의 다양한 환경에서 달리며 성능과 내구성을 모두 겨루는 시합이다.

세계 최고속 자동차 경주 '포뮬러 원'. 이 경주에 참가한 경주자들은 1000분의 1초를 다툰다./포뮬러 원 제공

경기가 열리는 공간에 따라 온로드(일반 도로나 서킷)와 오프로드(산악 등 비포장도로) 경기로 구분하거나, 경주차에 따라 자동차 경기 전용으로 제작된 포뮬러 레이싱(포뮬러 원), 양산차를 기반으로 하는 그랜드 투어링(르망 24)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랠리, 내구레이스, 드래그레이스, 드리프트, 짐카타, 카트레이스 등 경기 방식에 따라서도 다르다.

자동차 브랜드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것뿐 아니라 모터스포츠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낸다. 가장 대중적인 포뮬러 원의 경우 올림픽, 축구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로 꼽히는데, 이 대회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관중만 30만명에 달한다. TV 중계 시청자는 전 세계 6억~7억명 수준으로, 세계 100대 기업(포브스 선정) 중 30% 이상이 모터스포츠에 후원할 정도로 이 분야의 경제적 가치는 크다.

◇ 내연기관 버리고 배터리로 극한의 성능 대결

그런데 최근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경쟁해온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내연기관 엔진이 아닌 전기 배터리를 동력으로 속도와 내구성의 우열을 가리게 된 것이다. 이미 글로벌 업체들은 전기차 레이스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 포뮬러 원과 르망24에 불참을 선언하고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더이상 내연기관 엔진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기존 레이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터리로 주행하는 전기차 레이스 '포뮬러 E'./포뮬러 E 제공

포뮬러 원을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전기차의 시대에 맞춰 2014년부터 순수 전기차 경주 대회 ‘포뮬러 E’를 개최하고 있다. 포르셰,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BMW, 스텔란티스, 르노닛산, 재규어랜드로버 등 주요 제조사들이 이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포뮬러 E에 참가하는 업체들은 배터리를 제외한 파워트레인을 규정 안에서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포뮬러 E가 각 브랜드의 전기차 기술력을 증명하는 새로운 경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가 참여하는 모터스포츠 포뮬러 E의 핵심은 ‘배터리 관리’다. 포뮬러 E에선 관객에 경주 차량의 배터리 잔량이 공개되는데, 결승선을 통과하는 차에 남은 배터리는 1% 수준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완주 전에 배터리를 다 써버리면 승리할 수 없다.

2021~2022시즌의 포뮬러 E 최종전은 내년 8월 13~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서 열린다. 원래는 작년 5월 열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취소됐다. 이후 FIA와 포뮬러E코리아, 서울시 등이 협의해 내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