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 표시제를 품목별·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관련 논의가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에는 해당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식품위생법과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유전자변형을 거쳤다면 유전자변형 DNA와 유전자변형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GMO임을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유전자변형 식품을 원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는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이라고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행법은 유전자변형 DNA 또는 유전자변형 단백질 잔류 여부에 따라 표시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했더라도 제조·가공 후 유전자변형 DNA 등이 남아있지 않으면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남 의원은 “현행법이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 등 기본권리를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는 표시 대상, 표시 방법 등 필요한 사항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도록 했다. 식품 업계 반발이 큰 점을 고려해 모든 품목이 아니라 식약처장이 정한 품목에 대해서만 GMO 여부를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GMO 완전표시제 관련 논의는 2013년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2018년에는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촉구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약 21만명이 동참했다. 당시 국민청원은 “GMO를 사용한 식품에는 예외 없이 GMO 표시를 하고, 공공급식·학교급식에는 GMO 사용을 금지해달라”며 “Non-GMO 표시가 불가능한 현행 식약처의 관련 고시를 개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무 부처인 식약처는 이후 소비자, 시민단체, 산업계 등이 참여하는 ‘GMO 표시제도 개선 사회적 협의회’, ‘GMO 표시강화 실무협의회’ 등을 운영하며 30회가량 회의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식약처의 입장이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GMO 표시 제도 도입을 찬성하지만 식품 업계는 GMO 완전표시제가 시행되면 GMO 식품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생산 비용이 커질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식약처 입장에서는 GMO 표시 대상 품목이 많아지면 완벽하게 관리하기 어렵다는 고민도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권 보장을 위한다는 원칙적인 측면에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도 도입에 따른 원료 수급 불안, 제품 가격 상승, 산업 경쟁력 약화 등 사회·경제적인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 상승 등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2022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은 “2024년에는 GMO 완전표시제를 법제화하고 2026년부터는 품목별로 단계적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도 “이해관계자인 소비자, 시민단체, 식품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제도화가 늦어지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나왔다. 오 처장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 법제화가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법안은 그간 식약처가 관련 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한 만큼 더 이상 제도화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에서 나왔다. 작년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된 ‘GMO 특별법’이 야당 주도로 발의됐지만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남 의원실 관계자는 “그동안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판단했다”라며 “법률적용 대상에는 원재료인 1차 가공식품만 해당되며 2차, 3차 가공식품은 제외했다. 유럽에선 2차·3차 가공식품까지 ‘완전한’ 완전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현실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간장, 대두유, 전분당(물엿, 과당) 등 주요 품목부터 단계적으로 GMO 완전표시제가 시행된다. 식약처가 그동안 협의회를 운영하며 업계 의견을 수렴한 것을 개정안에 담았다는 것이 남 의원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간장과 맥주 등 일부 품목은 비 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식용유는 대체로 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CJ제일제당, 대상, 사조 해표, 오뚜기 등 식용유 제조업체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가정용 식용유 소매점 총매출은 1887억원이다. CJ제일제당이 695억원으로 가장 많다. 사조해표(404억원), 대상(196억원), 오뚜기(131억원), 동원F&B(130억원) 순이다.
2023년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국민 78.5%가 GMO 완전표시제 도입 필요성을 지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47.3%는 GMO 완전표시제로 인한 식품 가격 상승도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27.4%는 가격 상승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