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일본 와이너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이 국내에 상륙했다.

9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나라셀라는 지난해 12월 23일 일본 마루키 와이너리 주요 제품군을 들여왔다. 이어 30일에는 주류업계와 요식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쇼케이스에 해당하는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스즈키 케이치 마루치 와이너리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석했다.

마루키 와이너리는 1891년 창립해 현재까지 130년 넘게 와인을 만들어 온 회사다. 일본 도쿄에서 차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까운 야마나시현(山梨県)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지역은 일본 전역 와이너리 400여 곳 가운데 100여 곳이 몰려있는 지역이다.

와이너리를 세운 츠치야 다츠노리는 1877년 다이니혼(대일본·大日本) 와이너리에서 일하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으로 건너가 일본인 최초로 양조 기술을 배웠다. 우리나라는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과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체결 등으로 마찰을 빚던 시기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초기 유럽과 똑같은 포도 품종으로 양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현재 마루키 와이너리가 주력으로 삼는 와인들도 일본 환경에 맞춰 개량한 일본 품종 ‘코슈’, ‘머스캣 베일리 A’ 등이다. 국내에도 이 품종으로 빚은 와인들이 들어왔다.

그래픽=손민균

나라셀라는 와인 수입업계 3~4위를 다투는 대형 수입사다. 2021년 기준 매출액 889억을 기록했다. 국내 시장 성장세를 감안하면 지난해 매출액은 1000억원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이렇게 몸집이 큰 국내 대형 와인 수입사들은 일본산 와인을 취급하지 않았다. 대형 와인 수입사 가운데는 나라셀라, 중소형 와인 수입사 가운데는 일본 아사히그룹 소속 에노테카 정도가 시라유리 양조와 그레이스 와인 제품을 소량 수입했다.

일본산 와인은 ‘와인의 본고장’ 유럽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같은 소위 ‘신대륙’ 와인과 가격으로 경쟁하기 어렵다. 인력구조에 따른 인건비, 포도밭 크기에서 오는 규모의 경제 면에서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일본 내 와인 생산량은 연간 8만5000톤으로 1위 이탈리아(480만톤) 대비 2%에 못 미친다. 8위 칠레(122만톤)와도 현저한 차이가 난다.

가격 부분을 차치해도, ‘일본이 정말 와인을 만드냐’에 대한 의구심과 일본산 와인 인지도가 발목을 잡는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일본산 레드와인 수입액은 1년 내내 6600달러(약 840만원)에 그쳤다. 그나마 2019년 반일(反日) 불매 운동을 맞으면서 1300달러(약 165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미국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이 상승하면서(엔화 가치 하락) 일본산 와인 가격 경쟁력이 이전에 비해 살아나기 시작했다. 2020년 1달러당 1191원까지 올랐던 환율은 지난해 11월 920원대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갓포(割烹)나 가이세키(懐石) 요리점, 오마카세 초밥집 같은 일본 고급 주류가 필요한 채널이 우리나라에서 완연히 자리를 잡으면서 일본산 와인 수입에 힘을 실어줬다.

주류업계에서는 마승철 나라셀라 회장이 꾸준히 일본 주류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도 이번 일본 와인 수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마 회장은 지난 2015년 나라셀라를 인수한 이후, 2017년 사케 같은 일본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나라사케앤스피릿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는 “상장을 앞둔 나라셀라 입장에서 상품군을 최대한 늘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젊은 소비자층에서 반일정서가 이전보다 체감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산지가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