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 시장점유율 1위 제품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이 전반적인 먹거리 물가 인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위 제품이 가격을 올리면 후발주자인 경쟁사들도 뒤따라 가격을 올리는 ‘도미노 현상’을 촉발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올 한해 정부 고위 관료들이 수차례 가격 인상을 신중히 결정해 달라며 호소하는 것도 무용지물이었다. 영업이익률이 오히려 개선됐음에도 가격을 올리거나, 한 해에 두 차례나 가격을 올린 기업도 있었다.

글로벌 원부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극심하다는 게 기업들이 내세우는 주된 이유다. 하지만 경기 불황과 금리 상승, 인플레이션이 맞물려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고통 분담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그래픽=손민균

◇CJ제일제당 영업이익 4년만에 2배... ‘사상 최대’에도 소비자물가 웃도는 가격 인상

22일 조선비즈가 국내 식품회사들의 최근 3년간 대표 제품의 가격 인상 추이, 영업이익과 매출 원가율 등 주요 경영 지표를 취합해 분석한 결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 이후 올해 말까지 제품군별 1위 상품 가격이 2~3차례 인상됐다.

종합조미료(81%), 설탕(80%), 즉석밥(67%) 등 18개의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CJ제일제당(097950)은 영업이익률이나 매출원가율이 해마다 개선되고 있음에도 제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의 올해 영업이익은 1조7796억원, 매출액은 30조1863억원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 영업이익은 2019년 8969억원이었는데,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집밥 열풍’으로 수혜를 톡톡히 보면서 영업이익이 4년만에 2배로 확대됐다.

CJ제일제당의 영업이익률은 2019년 4.01%에서 ▲2020년 5.61% ▲2021년 5.8%으로 늘어 올해는 5.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출원가율도 2019년 80.84%에서▲2020년 78.61% ▲2021년 78.01%로 차츰 낮아졌다.

CJ제일제당의 가격 인상은 올해 식품업계의 잇따른 가격 인상을 촉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CJ가 올리면 후발주자들도 유통 공급가를 올린다”는 관행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실제 CJ제일제당이 시장 1위 상품인 햇반·스팸·밀가루 등 품목의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자, 경쟁사들이 뒤따라 각 유통업체에 공급가를 올리는 현상이 이어졌다.

CJ제일제당이 지난 3월 햇반 가격을 1700원에서 1850원으로 올리자 오뚜기(007310)도 즉석밥 가격을 올렸다. 또 스팸 가격이 올해 3월 인상되자 동원디어푸드는 지난 11월 경쟁 제품 ‘리챔’ 가격을 올렸다.

CJ제일제당의 제품 가격 인상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1월 기준 육류가공식품 물가는 전년보다 16% 올랐지만, CJ의 쿠팡 스팸 공급가는 69% 인상됐다.

이외 비비고 교자(380%), 백설탕(323%), 포도씨유(251%), 고추장(176%), 밀가루(161%) 등도 평균 물가 상승률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

‘식품업계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타업체 대비 인상폭이 크다’는 지적에 대해 CJ제일제당은 “2020년 1분기 말과 올해 1분기 말의 국제 곡물 시세를 비교하면, 2년간 원맥은 79%, 대두 102%, 옥수수 91% 상승 등 매우 크게 올랐다”며 “많게는 10%포인트 이상의 인상률을 감내하며 인상폭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손민균

◇두 달만에 또 오른 컵커피 1위 바리스타룰스...커피믹스, 원재료값 떨어져도 올렸다

CJ제일제당 뿐만 아니라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의 가격 인상은 식품업계 전반에서 이뤄졌다.

매일유업(267980)은 다음달 1일부터 컵커피 제품 가격을 최대 12.5% 인상하기로 했는데, 불과 두 달만이다.

매일유업의 가격 인상 대상 제품에는 지난해 닐슨코리아 자료를 기준으로 15.9%라는 가장 높은 컵커피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바리스타룰스’ 제품도 포함됐다.

잇따른 가격 인상에 따라 바리스타룰스 220㎖의 가격은 2000원에서 1년만에 30% 오른 2600원이 됐다.

경영 상황이 악화돼 불가피한 가격 인상이었다고 보기에는 매일유업은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매일유업의 매출원가율은 지난 2019년부터 꾸준하게 70%를 유지하고 있고, 증권가에서는 올해 매출액을 1조6717억원, 영업이익을 693억원으로 내다본다.

2022년 유로모니터 기준 23.2%의 탄산음료 시장점유율을 가진 1위 브랜드 코카콜라도 내달 1일부터 코카콜라와 코카콜라제로, 몬스터에너지 제품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올린다.

국내에 코카콜라음료를 유통하고 있는 LG생활건강(051900)은 앞서 올해 1월 1일 코카콜라 가격을 평균 5.7% 인상했는데, 재차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캔참치 제품군 시장점유율 1위 회사인 동원F&B(049770)도 캔참치 가격을 지난해 12월 1일 2580원에서 2800원으로 올렸는데, 올해 12월 1일 2980원으로 한차례 더 올렸다.

동원F&B의 캔참치 시장 점유율은 2019년부터 80%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출원가율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77%대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동원 F&B가 가격을 올리자 사조대림(003960)도 지난해 9월 캔참치 가격을 슬그머니 올렸다.

식품사들의 제품 가격 인상은 원재료 가격 상승률보다 크거나,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이뤄졌다.

커피의 경우 동서식품은 지난 15일부로 맥심·카누 제품의 출고 가격을 평균 9.8% 인상했다. 동서식품의 국내 믹스커피 시장 점유율은 판매액을 기준으로 8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1월에 이어 1년에 두 차례나 가격을 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ICE(국제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커피 선물 가격은 지난 9월 28일 1파운드 당 2.28달러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내려 지난 19일 기준 1.64달러를 기록했다.

◇부총리도, 차관도, 실장 말도 소용 없는 가격 인상 릴레이

정부가 시장 영향력이 큰 식품 제조사들의 연쇄적인 가격 인상에 대해 거듭 자제를 요청했지만, 가격 인상을 막지는 못했다.

물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부터 이달 9일까지 공개적으로 8차례에 걸쳐 물가 안정을 위한 기업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농식품부는 지난 9일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고 CJ제일제당, 대상(001680), 오뚜기, SPC, 동서식품, 농심(004370) 등 13개 주요 식품업체 임원진이 참석한 가운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당시 김정희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식품업계가 대체적으로 전년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하고 영업이익률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물가안정을 위한 업계의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9월 “4분기 이후 식품업체의 원자재 비용부담이 완화될 것”이라며 “한번 오른 식품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고물가에 기댄 부당한 가격 인상이나 편승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지난 2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인상 품목과 인상폭 최소화 등 고통 분담에 나서달라”, “기업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흡수해달라”고 한 정부의 입장이 강경해졌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 변화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5%로 7월(6.3%)보다는 둔화했는데도 식품 물가 상승률은 9%를 유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농식품부 뿐 아니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호소도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추 부총리는 지난 9월 “많은 경제 주체가 물가 상승 부담을 감내하고 있는데 가공식품 업계도 인상 요인을 최소화 해달라”고 요청했다.

방기선 기재부 차관보도 같은 달 “최근의 곡물 가격 안정세 등을 감안해 업계에서도 가격 인상 최소화 등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 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