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제과 본사에서 만난 조영일 책임이 '디지몬빵'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양범수 기자

“캐릭터보다 더 신경 쓴 건 빵의 품질입니다. 하루에 20개씩 먹었어요.”

지난 8월말 출시된 롯데제과의 ‘디지몬(디지털 몬스터)빵’이 출시 40일 만에 약 190만개가 팔리며 ‘포켓몬빵’에 이은 캐릭터 빵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한 개 가격이 15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29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디지몬빵은 현재 롯데제과의 빵 생산량의 20%를 차지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에 대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생산 공장을 더 늘려야 할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탄생의 과정이 수월하진 않았다.

디지몬빵의 기획을 담당한 조영일(37) 이노브레드마케팅담당 책임은 “작년 12월부터 캐릭터 빵 기획을 추진했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라며 “매주 두 차례 회의 때마다 디지몬 관련 자료를 들고 임원들을 설득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라고 했다.

조선비즈는 지난달 4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제과 본사에서 디지몬빵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인 조 책임을 만났다. 그는 1985년생으로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이자 10년 차 직장인이다. 조 책임은 앞서 누적판매량 100만개 이상을 달성했던 빵 제품인 ‘기린 골드라벨’의 기획에도 참여했었다.

◇ ‘포켓몬’에 대항해 내놓은 ‘디지몬’… “2001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28.7%”

디지몬빵은 지난해 12월 ‘캐릭터빵을 출시하면 어떨까’하는 조 책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당시 ‘포켓몬’, ‘디지몬’, ‘원피스’, ‘하이큐’ 등 여러 캐릭터를 물망에 올려놓고 기획을 추진했으나, 포켓몬이 SPC삼립 측과 빵을 만들게 되면서 이에 맞서기 위해 디지몬을 택하게 됐다.

하지만 초기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어차피 캐릭터 빵은 잘 안 나가잖아”, “잘 안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등 캐릭터 빵 기획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 조 책임은 소위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 책임이 포기하지 않고 TV 애니메이션 시청률과 이전에 출시됐던 디지몬빵 판매 자료에 근거해 디지몬빵 출시를 밀어붙였다.

롯데제과에 따르면 ‘디지몬 어드벤처’가 KBS에서 방영되던 2001년 최고 시청률은 28.7%, 평균 시청률은 15%에 달해 다른 요일에 방영되던 애니메이션 시청률인 평균 3.3%보다 크게 높았다.

디지몬 캐릭터 관련 상품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01년 SPC삼립이 디지몬빵을 출시했을 당시 해당 제품의 월평균 판매 실적이 100억원에 이르렀으며, 롯데제과도 ‘디지몬 주물러’와 ‘디지몬 껌’ 등을 출시하며 월 매출 20억원가량이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 책임은 한 주에 두 차례 진행되는 회의에서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아이들(디지몬 어드벤처의 주인공들을 이르는 말)이었다’는 제목으로 당시에 시청자였던 MZ세대가 구매자가 되었음을 얘기하며 임원들을 설득한 끝에 지난 3월 디지몬과 지적재산권(IP)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아구몬의 허니크림빵’, ‘텐타몬의 고소한땅콩샌드’, ‘파피몬의 파인애플케익’, ‘파닥몬의 마롱호떡’의 단면. /양범수 기자

◇ “매일 빵 20개씩 먹어… 맛없다는 말 안 나오도록 최선 다해”

조 책임은 디지몬빵 출시가 결정된 이후에는 빵 맛을 위해 더 바쁘게 움직였다. 1990년대 출시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국찐이빵’. ‘핑클빵’ 등이 빵보다 동봉된 ‘띠부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이 주목받으면서 씰만 갖고 빵이 버려진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제품보다 나은 맛을 만들기 위해 공장 관계자, 연구원들과 소통하며 많게는 하루 20개씩의 빵을 먹어가며 실험을 거듭했고, 한 단계씩 발전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디지몬빵은 ‘아구몬의 허니크림빵’, ‘파피몬의 파인애플케익’, ‘텐타몬의 고소한땅콩샌드’, ‘파닥몬의 마롱호떡’ 4종으로 출시됐다.

이 가운데 허니크림빵은 롯데제과에서 최초로 화이트크림과 꿀을 함께 사용한 제품이다. 파인애플 케익은 인위적인 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땅콩샌드 역시 기존보다 많은 양의 크림을 사용했다. 마롱호떡은 밤 통조림을 사용해 식감을 더했다.

조 책임은 “캐릭터 선정에도 많은 공을 들였지만,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은 품질”이라면서 “고객들이 제품을 먹었을 때 ‘맛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빵을 하도 먹어서 살이 쪘다가 출시 이후 조금씩 살이 빠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캐릭터빵 트렌드, 내년까지 이어질 것… 후속 제품도 계획 중”

조 책임은 지금은 후속 제품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디지몬 어드벤처의 캐릭터들이 남아있고, 이번에 출시한 제품들이 늦은 여름과 가을에 맞게 만들어진 제품인 만큼 겨울에 맞는 제품들도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 디지몬빵이 롯데마트와 롯데슈퍼, 세븐일레븐을 통해서만 판매되고 있지만, 판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빵보다는 띠부띠부씰의 제작 수량이 한계가 있어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조 책임은 “캐릭터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며 “SPC삼립이 ‘포켓몬빵’으로 흥행몰이를 시작했지만, 롯데제과가 만들고 있는 메이플스토리빵, 디지몬빵 역시 잘 팔리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 반응이 계속된다면 디지몬의 다른 시리즈나, 진화한 디지몬 버전의 빵 출시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