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빚어왔지만 중간에 명맥이 끊겨 문헌 속에서만 존재했던 황금색 술 ‘아황주(鴉黃酒)’와 푸른 빛 ‘녹파주(綠波酒)’를 부활시킨 곳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에 걸쳐 두 술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개량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문헌마다 술 제조법에 대한 표현도 조금씩 다른 데다, 계량법도 당대와 지금과 달라 농진청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결국 복원에 성공했고, 사람들이 상용화할 수 있도록 기술 이전을 했다. 당시 경남 함양에서 녹파주를 생산하던 양조업체는 서울 사무소를 내면서 사세를 확장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녹파주와 아황주./농촌진흥청 제공

◇하루에 술 11잔 마시며 고군분투

지난 20일 이 같은 전통주 복원 사업을 비롯해 발효 식품에 연관된 연구를 하는 농진청 농업과학원의 발효·가공연구동에 도착했다. 전주에 위치한 이 시설은 지상 2층, 건축 면적 1328㎡ 규모다. 이 시설은 누룩 제조실, 곡류 가공실, 미생물 배양실, 장류 및 식초 발효실, 기기분석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곳에서는 된장, 고추장 같은 장류 등 다양한 발효식품의 품질 개선 등을 위한 연구가 진행된다. 전통주도 이 곳에서 하는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다. 연구실에는 술을 제조하는 설비들로 가득했다. 쌀을 찌는 대용량 밥솥과 증류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류 연구를 담당하는 강지은 농업과학원 발효가공식품과 연구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주류용 효모가 없이 빵 효모를 수입해서 막걸리 등을 빚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며 “예전에 쌀이 부족한 시절, 쌀로 막걸리를 빚지 못하게 하면서 명맥이 끊겼고 이를 다시 복원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맛있는 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곳의 연구자들은 매일 술을 맛보고, 평가한다. 강 연구사가 평균적으로 하루에 마시는 술은 11종이라고 한다. 한 잔씩만 마셔도 하루에 11잔의 알콜 함량이 높은 주류를 마셔야 하는 셈이다. 그는 10년간 이 업무를 담당했다.

수수 등 잡곡을 쪄서 고체 발효를 하는 설비./전주=이민아 기자

◇사케 대체할 우렁이쌀 청주도 인기 몰이

농진청에서 이렇게 개발된 효모 기술 등은 기업으로 이전돼 상용화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술로만 169건이 기술 이전 됐다.

농진청의 기술 이전으로 만들어진 주류 가운데 최근 유명세를 얻고 있는 상품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했던 박유덕 대표의 ‘골목막걸리 프리미엄’이다. 행정안전부와 청년창업으로 연계해서 시제품을 만들어보고, 첨가물없이 달달한 막걸리를 만들어냈다.

농진청은 이곳에서 외국산 주류에 대적할 수 있는 한국 술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산 청주를 의미하는 ‘사케’와 달리 우리나라의 누룩을 활용해 만든 양촌양조의 ‘우렁이쌀 청주’도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다. 쌀누룩 제조와 알코올 발효에 사용되는 미생물을 누룩으로부터 분리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충남 논산 찹쌀로 빚은 청주./농촌진흥청 제공

최근 농진청은 중국의 고량주를 대체할 수 있는 술도 연구 중이다. 강 연구사는 “수수 등 잡곡을 쪄서 고체 발효를 하는 방법으로 고량주를 제조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며 “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투입되는 잡곡에 비해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수수에서 나오는 향기가 워낙 좋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자체 연구소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농진청에서 이전된 기술은 중소기업과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양조장에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 대형 제빵회사와 제빵용 효모를 제과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동 연구도 이제 막 시작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