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위스키 시장 1위 디아지오코리아가 돌연 플라스틱 저감 정책을 꺼내 들었다.

지난 9일부터 주류전문점 등 유흥시장에 판매·공급하는 ‘윈저’, ‘W시리즈’ 등 총 3종 위스키 제품에 한해 캡실(뚜껑 비닐 포장)을 사전 예고 없이 제거해 유통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플라스틱 저감,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캡실 공정 차질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디아지오코리아의 위스키 캡실 제거가 국세청이 정한 위스키 유통 규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가 판매 중인 위스키 '윈저' 제품. /디아지오코리아 제공

23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디아지오코리아는 지난 9일부터 위스키를 취급하는 주류전문점 등 유흥업소에 공급하는 일부 위스키 제품의 뚜껑 부분 보호 비닐 필름인 캡실을 제거했다.

해당 위스키 제품은 ‘윈저 12년산’(Windsor 12)과 W시리즈 ‘W허니’, ‘W아이스’ 등 3종 제품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디아지오코리아는 캡실 제거 위스키 유통 이튿날인 10일에야 거래처에 관련 내용을 공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공지에서 디아지오코리아는 “글로벌 본사의 플라스틱 감축 등 친환경 정책에 따라 (비닐 소재인) 캡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정상적인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캡실 부착은 수입 위스키인 윈저, W시리즈의 판매 전 마지막 공정으로 통한다. 수입 위스키를 국내에 팔기 위해선 한국어 라벨을 붙이고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 태그를 부착하는 ‘리웍’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캡실은 뚜껑에 붙은 RFID 태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업계에서는 디아지오코리아가 ‘친환경’을 내세워 ‘리웍 공정 차질’을 가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캡실 제거가 사전 공지도 없이 갑자기 이뤄진 데 더해 윈저 12년산과 W허니, W아이스 등 3종 위스키 외에 ‘윈저 17년’, ‘W17′, ‘W19′ 등에선 캡실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캡실은 가짜 위스키 유통 등 위스키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RFID 보호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상 생길 수 있는 뚜껑 열림 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사전 준비 없이 캡실부터 없애고 보는 건 공정 차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디아지오코리아 이천공장 전경. /디아지오코리아 제공

실제 디아지오코리아가 경기도 이천에서 운영하는 이천공장 리웍 라인의 캡실 설비는 가동이 멈춘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사모펀드 그룹 ‘베이사이드프라이빗에쿼티-메티스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으로 윈저 운영권을 매각에 반발한 노조가 공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현재 디아지오코리아는 베이사이드프라이빗에쿼티(PE)-메티스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으로 윈저 브랜드와 W시리즈 매각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오는 7월 중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지만, 노조는 이에 반발해 4명의 생산 인력과 1명의 자재 인력 지명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디아지오코리아는 지역 영업소 지점장 등 본사 소속 비조합원을 파견해 리웍 라인을 대신 돌리고 캡실 공정 등에서 발생하는 기기 고장을 외부 용역을 통해 해결해 왔다.

그러나 노조 파업 시 외부 용역을 활용한 대체 인력 투입은 노동법 위반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조차 중단됐다.

디아아지오코리아 내부 관계자는 “생산 자체를 중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게 되자 일단 캡실 없는 수작업 출고를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회사가 최근까지도 캡실 원재료 재고를 기존 100만개에서 200만개로 늘리는 등 캡실 제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디아지오코리아 위스키 '윈저'에 부착된 RFID. /조선비즈

이런 가운데 디아지오코리아의 캡실 제거가 국세청에서 정한 위스키 유통 규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스키 업체들은 국세청이 부여한 고유번호와 제품명 등 제품 정보가 입력된 RFID를 위스키 병마개에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하는 데 떨어질 수 있어서다.

국세청은 가짜 위스키 유통, 세금 탈루 등의 가능성이 있는 위스키의 경우 제조장에서 소매점까지 모든 유통과정의 추적이 RFID를 통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RFID 훼손 등의 이유로 추적 등이 불가할 경우 해당 위스키를 판매한 업소에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유흥업소에서는 위스키라고 해도 차게 먹는 우리나라 고객들의 특성을 반영해 일단 냉장고에 위스키를 들여놓는데, 캡실이 없이 유통된 위스키의 RFID 태그는 저온에서 접착력을 잃고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규모 반품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디아지오코리아는 친환경 정책에 따른 캡실 제거가 맞다는 입장이다.

디아지오코리아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를 제거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그 첫 번째로 윈저와 W시리즈를 정한 것”이라면 “추후 윈저 17년산 등으로도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