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주 공병 팝니다. 미개봉품은 2만원”

지난 16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으로 원소주 공병을 판매하겠다는 게시물을 올린 한 판매자에게 ‘미개봉 상품이냐’고 묻자 ‘미개봉은 2만원’이라는 답을 받았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원소주 판매자와의 대화 내용 및 내역. /양범수 기자

해당 판매자는 공병을 판매하겠다는 게시물 사진에 액체가 들어있는 새 상품 같은 사진을 사용했는데, 공병도 판매하지만 병을 뜯지도 않은 새 상품도 판매한다는 것이다. 해당 판매자는 공병은 8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자와 오전 7시40분쯤 서울 서초구 한 빌딩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그는 “원소주 사신다고 한 분이냐”고만 물은 뒤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구매자가 성인이 맞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쇼핑백 안에는 제조사에서 택배 발송한 상태 그대로 에어캡에 포장된 원소주가 들어 있었다. 판매자는 ‘뜯지 않은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송금은 앱 페이(당근페이) 기능을 통해 이뤄졌다. 그는 보통 판매 가격보다 저렴하게 파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세를 잘 몰랐다”고만 했다.

거래가 이뤄지는 데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돌아와 스크류캡을 열고 확인해 보니 알코올 향이 코를 찔렀다. 공병에 다른 액체를 채우고 재포장을 한 게 아니라 진짜 원소주였다.

지난 16일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구매한 원소주. /양범수 기자

원소주는 가수 박재범이 설립한 주류업체 원스피리츠가 만든 전통주다. 박재범의 인지도 등에 힘입어 판매가 이뤄질 때마다 매진돼 품귀현상이 빚어지자 이러한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개인간 거래가 나타난 것이다.

◇ 공병은 중고판매 허용 꼼수 이용...실제 웃돈 받고 주류 불법 판매

18일 중고나라에는 원소주를 거래하는 게시물 10여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근마켓·번개장터 등에도 이러한 게시글이 여럿 눈에 띄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형성된 가격은 통상 3만~4만원 선으로 원소주의 출시 가격이 1만5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 이상 비싸다. 원스피리츠가 지난 16일부터 개당 6만5900원에 출시한 기프트세트(원소주 2병과 잔 2개 구성)는 16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품을 사겠다는 게시물도 많다. 지난 16일 저녁 8시쯤 ‘원소주 삽니다 찰랑’이라는 게시물에는 판매 의사를 가진 이용자 10여명의 댓글이 달렸다. 카드나 술을 담는 작은 옹기, 잔 등 원소주 ‘굿즈’를 구하기 위한 글도 여럿 눈에 띄었다.

앞선 사례처럼 ‘공병을 판다’면서 새 상품을 안내하거나, 3만~4만원의 가격대에 공병을 판매한다고 하면서 새 상품 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찰랑공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다수 눈에 띄었다.

찰랑공병은 일종의 꼼수다. 주류 판매는 금지돼 있지만 인테리어 소품 등의 용도로 공병은 판매가 이뤄지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담배 및 주류 등 청소년 유해물품 거래를 금지하고 있고,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에 따라 주류 판매 면허가 없는 개인의 주류 판매를 막고 있다.

가수 박재범이 만든 원스피리츠의 '원소주' 온라인 거래 게시물. /네이버 캡처

◇ 중고거래 플랫폼 “필터링 한계 있어”…국세청 “협조 요청할 것”

중고거래 플랫폼들을 통해 원소주가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데는 플랫폼들이 이러한 게시글들을 걸러내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

키워드를 통해 게시물을 관리하고 있지만 ‘찰랑공병’과 같이 은어화하는 키워드들을 즉각적으로 쫓아가기엔 한계가 있고, 직원들이 모니터링을 하지만 실제로 개인간에 어떻게 거래가 이뤄졌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권승욱 중고나라 매니저는 “1초에 4건씩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어 키워드 차원에서 필터링 할 수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며 “원소주의 경우 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는데, 실제로 소주가 들어있는 것을 팔겠다는 것인지 공병만을 팔겠다는 것인지 일일이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중고거래 플랫폼의 이용정책과 별개로 면허가 없는 개인이 온라인으로 주류를 판매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조세범 처벌법에 따르면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면허를 받지 않고 주류를 판매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 판매할 경우 현행 영리를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주류 등 청소년유해약물 등을 판매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공병을 판매하는 사람 중 누가 공병이 아닌 주류를 판매하는지 가려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공병 판매가 악용되는 점이 있으니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