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3시. 성수역 3번 출구 바로 앞 골목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스타벅스의 초록색 로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매장 내부에는 대기 인원이 없었고 빈 자리가 몇 곳 눈에 띌 정도로 여유로운 분위기 였다. 책이나 노트북을 펴놓고 업무나 과제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스타벅스에서 나와 우회전하면 식당과 가죽공방이 늘어선 거리가 나오는데, 골목 초입 마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을 따라가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인증샷으로 본 듯한 카페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2층 규모의 주택이나 공장 전체를 개조한 초대형 카페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27일 오후 3시,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한 창고형 카페 내부 모습. 넓은 공간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 이현승 기자

서울 강남, 여의도, 종로 등 핵심 상권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뽐내는 스타벅스가 유독 맥을 못 추는 동네가 있다. 성수동, 연남동, 북촌, 이태원 등 요즘 20대들이 즐겨 찾는 소위 힙(hip·유행을 앞서가거나 최신 유행이라는 뜻)한 곳들이다. 이곳에선 수도권 어딜가나 볼수 있는 스타벅스보다 찾기 어려운 곳에 숨어있는 희귀한 동네 카페에 사람이 몰린다.

일부 전문가는 그동안 스타벅스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가려졌던 이런 현상에 주목한다. 골목상권을 둘러싼 경제현상을 설명한 책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연희동, 연남동, 성수동, 을지로 등 주요 골목상권에선 동네 브랜드가 스타벅스를 이긴지 오래됐다”며 “골목상권이 전국적으로 늘면서 스타벅스를 대로로 내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손민균

모 교수는 스타벅스가 소규모 컨셉매장이나 로스터리(원두를 볶는 시설)를 늘려 동네에 침투하는 대신 DT(드라이브스루) 중심으로 확장한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본다. 스타벅스가 2012년 도입한 DT 매장은 현재 320개다. 맥도날드(240여개)보다 많다. 스타벅스는 전국 매장 수가 1000개를 넘어선 2017년부터 DT 매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수도권 중심가가 포화 상태가 되자 외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DT 매장은 상당수가 수도권 외곽이나 비(非)수도권에 있고 경영난에 빠진 주유소 등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에 입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다. 그 동네 거주자 뿐 아니라 차량으로 지나치는 사람까지 흡수하는 효과가 있어 고객 수가 일반 매장보다 20~30% 정도 더 나오고 회전율도 높다.

그러나 DT 매장은 공간을 체험하는 데 큰 의미를 두는 요즘 소비자들의 트렌드에는 맞지 않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거치면서 소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전환되자, 웬만한 물건은 이커머스에서 살 수 있게 된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선 색다른 경험을 원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문연 백화점과 마트는 판매보다 전시와 체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도시재생 스타트업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는 “요즘 젊은세대들의 주거공간이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에 카페가 공간 임대업에 가까운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며 “같은 돈을 주고 더 좋은 공간을 누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우서울은 지난 8월 경기도 의왕에 문연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 공간 디자인에 참여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DT는 스타벅스 내부에서도 실패한 전략이라는 시각이 있다”며 “스타벅스 리워드 회원 수가 올해 800만명을 돌파하고 매출은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20대를 비롯한 신규 고객층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지에 대해 내부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스타벅스의 매출은 작년 1조9284억원에서 올해 2조3000억원으로 증가해, 1999년 국내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벅스가 동네 카페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 것은 객관적인 상권 분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스타벅스가 입점함으로서 인근 상권이 활성화 된다는 뜻에서 스세권(스타벅스와 역세권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실체는 불분명하다.

작년 3월 한양대 도시공학과 연구진은 2016년 서울에서 개점한 스타벅스 매장의 입점 전후 1년 공시지가, 유동인구 등을 살펴본 결과 주변 지역 가치가 뛸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일 뿐 실제로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애초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을 추구하는 동네 카페와 전 지점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스타벅스의 사업 전략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유정수 대표는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가 있는 동네 카페들과 스타벅스는 다르다”며 “경기도 양평에 문연 스타벅스 더양평DTR점를 보면 여전히 스타벅스의 힘은 상당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스타벅스가 스페셜티 매장을 만들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