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둘러싸고 자존심 싸움을 벌여왔던 신세계와 롯데. 인천 송도에서는 이번에도 롯데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신세계가 백화점을 짓겠다던 부지가 계속 빈 땅으로 남겨진 채 계획도 못 잡고 매년 100억원씩 적자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롯데는 신동빈 회장까지 나서 ‘송도의 랜드마크’로 롯데몰 송도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2025년 준공 목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004170)는 최근 자회사 인천신세계에 300억원을 출자했다고 공시했다. 1년에 100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는 인천신세계에 대략 3년 정도의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출자 후 인천신세계에 대한 신세계 지분율은 기존 90%에서 92.65%로 늘어난다.

인천신세계는 2015년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복합 쇼핑몰을 건립하기 위해 설립한 법인이다. 신세계는 2016년 송도동 10-1~3번지 일대 5만9600㎡ 부지를 2300억원 수준에 매수했다.

당시만해도 신세계는 이 부지에 2019년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복합쇼핑몰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원래 계획보다 이미 3년이나 연기됐다.

그래픽=이은현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인천신세계는 손실만 내고 있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말 기준 인천신세계의 영업손실은 110억원, 당기순손실은 172억원을 기록했다.

소유부지 일부 건물을 호텔에 임대놓으면서 얻는 수익(1억3600만원)보다 세금이나 컨설팅비용 등이 더 많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앞으로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컨설팅을 받다보니 컨설팅 비용이 들었고 보유세도 매년 납부해야 하면서 적자가 발생한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운영자금으로 300억원을 출자하게 됐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당분간 신세계 백화점 송도점 건립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에서는 송도보다는 수서 등을 우선순위로 보고 있어서다.

금리가 급격히 올라 자금운용에 신경써야 할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꺼번에 개발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세계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대전점 개점에만 7000억원 이상 투자가 이뤄진 상황이고, 동남권 첫 신세계 백화점으로 꼽히는 수서역세권 신세계백화점도 오는 2027년 개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인천에서는 청라에 더 신경쓰고 있다는 점도 신세계백화점 송도점 건립이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지난 8월 신세계그룹은 인천광역시와 함께 스타필드 청라, 야구 돔구장 건설 및 지하철 역사 신설을 포괄적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추진 중인 돔구장은 2만석 규모로 야구 경기 관람뿐 아니라 K-팝 공연 등 각종 문화·예술 공연을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 역할도 겸하는 최첨단 멀티스타디움이다.

함께 추진되는 스타필드 청라는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의 복합쇼핑몰로 조성된다. 완공 목표는 2027년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프라퍼티가 사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청라와 가까운 송도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기엔 그룹 전력낭비”라고 했다.

이는 롯데와는 행보가 다르다. 롯데는 인천신세계가 바로 앞에 롯데몰 송도를 계획하고 있다. 연수구 송도동 8-1 일대 8만4508㎡에 짓고 있는 롯데몰 송도는 리조트형 복합 쇼핑몰이다. 인공 수변과 쇼핑몰, 자연친화 녹지, 풀빌라 등이 한꺼번에 조성된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송도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최고의 설계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송도몰은 2025년 12월 완공이 목표다.

유통업계는 인천 송도에서 벌이는 롯데와 신세계의 경쟁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인천은 신세계와 롯데가 자존심을 걸고 혈투를 벌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롯데와 신세계는 이미 한 차례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으로 쓰이던 인천터미널 부지를 두고 5년에 걸친 소송전을 벌인 바 있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신세계가 인천시와 장기임대 계약을 맺어 운영하던 곳으로 연 매출 7000억원을 자랑하던 알짜배기 점포다.

하지만 인천시가 재정난을 이유로 이를 매각했고, 2012년 9월 롯데가 새 주인이 됐다. 롯데는 인천터미널 부지와 건물 7만7815㎡를 9000억원에 매입했다.

한 순간에 알짜배기 점포를 뺏긴 신세가 된 신세계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신세계 측은 “인천시가 더 비싼 가격에 터미널을 팔 목적으로 롯데와 접촉했고, 비밀리에 롯데 측에 사전실사·개발안 검토 기회를 주는 등 특혜를 줬다”며 인천시와 롯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7년 법원은 결국 “인천시가 터미널 매각 시 다른 업체들에도 매수 참여 기회를 줬기 때문에 롯데에만 특혜를 줬다고 볼 수 없다”며 인천시와 롯데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5년만의 결과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이 롯데로 넘어갔다는 소식에 당시 정용진 부회장이 크게 화냈다는 후문이 있다”면서 “이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인천에서 신세계와 롯데는 앞으로도 계속 팽팽한 경쟁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송도에서도 신세계와 롯데 중 어느 쪽이 먼저 준공을 완료하느냐에 따라 경쟁 우위가 바뀔 수 있는데 현재로선 롯데가 우위 같다”면서 “유통업에서는 선점효과를 누리는 편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