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 Inc 의장. /쿠팡

“지난 7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결실이다.”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이 ‘계획된 적자’에 마침표를 찍었다. 9일(현지시각) 실적 발표 투자자 컨퍼런스콜에서 김 의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시작됐지만 쿠팡의 성장세는 지속됐다”며 “모든 카테고리에 걸쳐 강력한 소비 증가세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쿠팡은 이날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7742만달러(1059억원, 환율 1368원 기준)로 흑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후 처음 이룬 성과이자,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첫 분기 흑자다.

3분기 매출은 51억133만달러(약 6조9811억원)로 원화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9068만달러(1240억원)를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하며 ‘계획된 적자’ 전략을 수행한 김 의장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쿠팡은 2014년 처음 익일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선보인 이래 현재까지 6조원에 이르는 누적 적자에도, 서비스 향상을 위한 투자를 지속했다. 증권신고서(S1) 등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부터 작년까지 총 6조원 규모를 투자한 것으로 추산된다.

김 의장은 천문학적 적자를 우려하는 시장의 목소리에도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뚝심있게 미션을 수행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의 신뢰와 충성도가 높아지며 손익구조가 안정적으로 개선되는 걸 입증했다.

◇’만년 적자’ 쿠팡, 첫 분기 흑자 달성

쿠팡은 3분기 영업이익 1059억원, 당기순이익 1240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1년 전인 지난해 3분기 영업손실 3억1511만달러(4309억원), 순손실 3억2397만달러(4432억)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크게 개선됐다.

조정 EBITDA(세전·이자지급전이익)는 1억9492만달러(2667억원)로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200%가량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2억743만달러) 손실을 낸 점을 고려하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은 10.6%다.

장 마감 후 발표한 흑자 전환 소식에 쿠팡 주가는 이날 오전 시간 외 거래에서 8.41% 상승한 17.66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쿠팡은 지난해 3월 상장 후 지난 1분기까지 매 분기 2500억~5000억원대 손실을 냈다. 하지만 올해 1분기부터 적자를 줄였고,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쿠팡식 로켓배송 물류 네트워크’가 증명된 것이라는 게 회사측 분석이다.

김 의장은 컨퍼런스콜에서 자동화 기술에 기반한 물류 네트워크를 실적 개선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수요를 예측한 결과 신선식품 재고 손실이 전년 대비 50% 줄었다”라며 “지난 7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기술, 풀필먼트 인프라, 라스트마일(최종 배송 단계) 물류 등을 통합한 결과 고객과 상품, 서비스와 가격 사이에 존재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양자택일 관계)를 깰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쿠팡 물류센터. 아마존의 풀필먼트센터(FBA)를 본떠 운영되고 있다. /쿠팡

고객 수와 구매력도 향상됐다.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구매한 적 있는 활성 고객 수(Active Customer)는 1799만2000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7% 늘어났다. 1인당 고객 매출은 284달러(약 39만원)로 3% 증가했고, 원화 기준으로는 19% 늘었다.

로켓배송·로켓프레시 등 커머스 부문 매출은 49억4717만달러(6조7702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조정 EBITDA는 2억3922만달러(3274억원)로 흑자 전환했다.

쿠팡플레이·쿠팡이츠·해외사업·핀테크 등 신사업 부문 매출은 1억5416만달러(211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 조정 EBITDA 적자는 전년 동기 대비 50% 축소된 4430만달러(606억원)로 집계됐다. 지난 2분기(3166만달러)과 비교하면 적자 폭이 더 늘었다.

김 의장은 “신사업 부문의 원화 기준 매출이 10% 성장했고, 매출 총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4200만 달러 증가했다”며 “신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쿠팡이 새로운 시장에서 고객 혁신을 펼쳐나갈 잠재력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향후 해당 부문의 장기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로켓 배송 외 핀테크, 쿠팡플레이 등 신사업도 장기 투자

김 의장은 1978년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인 1998년 시사 잡지 ‘커런트’를 창간해 3년 만에 뉴스위크에 매각해 사업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2년간 근무하며 각종 경영 이론과 사례를 익히기도 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와 쿠팡을 창업했다. 당시 소셜커머스 기업 그루폰을 벤치마킹했으나, 그루폰이 휘청하자 아마존 모델로 사업을 전환했다.

이어 2014년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는 익일 배송 서비스 ‘로켓배송’을 선보여 차별화를 시도했다. 자체 물류센터와 배송 인력(쿠팡맨)을 활용해 배송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으로부터 3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주목받았고, 지난해에는 뉴욕 증시에 상장해 첫날 시가총액 100조원을 넘기며 50억달러(당시 약 5조5000억원)를 추가로 확보했다.

그러나 창업 이래 쌓인 누적 적자가 6조원에 달했고, 국내 시장점유율 1위도 수성하지 못했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쿠팡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3%로 네이버(17%), 신세계그룹(15%)에 이어 3위다. 자연스레 쿠팡의 사업 방식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럼에도 쿠팡은 ‘계획된 적자’ 기조를 유지했다. 쿠팡은 로켓배송 물류 네트워크 구축은 물론, 쿠팡이츠(배달앱), 쿠팡이츠마트(퀵커머스), 쿠팡플레이(OTT), 쿠팡페이(간편결제) 등 신사업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지난 7월에는 유료 멤버십 가입자들에게 공짜로 제공되다시피 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활성화를 위해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 초청 경기를 독점 중계해 화제를 모았다.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을 확장해야 장기적으로 더 많은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TAM은 특정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 지역 확장을 했을 때 이론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 매출 규모를 의미한다.

김 의장은 “매 분기 개선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의미한 이익 확대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꾸준히 장기적인 기회를 발굴한다는 기존의 투자 원칙을 유지할 것이다. 올 초 밝혔듯 핀테크, 쿠팡플레이, 해외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2억 달러를 초과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