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대 면세 사업자인 롯데면세점이 올해 상반기 ‘나홀로 적자’를 기록했다. 여행 수요 증가로 2분기 적자 폭은 줄였지만, 작년말 9000억원에 달하는 재고를 회계상 반영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상쇄하지 못한 결과다.

반면 경쟁사인 신세계와 신라면세점은 고환율과 중국 봉쇄 악재에도 영업 흑자를 냈다. 롯데면세점은 호텔롯데 매출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주력 사업부다. 따라서 신동빈 그룹 회장의 숙원인 호텔롯데 상장에 악영향을 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이은현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는 올 상반기 8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2조4511억원이다.

2분기 매출액은 1조20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8% 늘었다. 영업손실은 마이너스(-) 139억원으로 1분기(-753억원) 대비 개선됐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64억원)에 비해 급락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유신열 대표가 이끄는 신세계디에프는 올 상반기 매출액 1조3737억원과 영업이익 480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매출은 81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1% 신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93억원에서 287억원으로 늘었다.

사측은 다이궁(중국 보따리상) 매출 비중이 감소한 대신 수익성 좋은 관광객 비중이 소폭 증가하고, 재고 감소에 따른 환입도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여전히 상황이 어렵지만 개별 여행객 매출이 다소 올랐다”며 “재고품 내수 판매를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인규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008770)의 면세 부문도 상반기에 27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액은 1조9886억원이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은 14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9% 감소했지만 여전히 흑자를 기록했다. 이 기간 매출액은 8456억원에서 1조101억원으로 19% 성장세를 보였다.

◇재고자산만 7300억...”2년간 쌓인 재고 손실로 반영”

롯데면세점 적자의 핵심은 재고 면세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 대량으로 발주한 상품이 창고 및 매장에 쌓여서다.

2년 간 팔지 못한 재고를 올 1분기 회계 처리 때 손실로 반영했고, 이것이 적자의 주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면세점은 상품 대부분을 직접 사들인다. 이른바 ‘직매입’ 방식이다. 위탁 매입으로 상품을 팔고 수수료를 받는 백화점과 달리, 판매하지 못한 재고 부담을 면세 사업자가 떠안아야 한다.

회계처리 방식은 기업마다 다르다. 신세계와 신라면세점이 분기 또는 1년마다 재고 손실을 반영하는 것과 달리, 롯데면세점은 2년에 한 번씩 재고 손실을 회계상 반영한다.

롯데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롯데의 상반기 재고자산은 총 7299억원이다. 지난해에는 8732억원, 2020년에는 무려 1조원이 재고로 기록됐다. 호텔롯데 전체 재고의 절대 다수는 면세 사업부에서 나온다.

신라면세점은 올 상반기 기준 6199억원, 신세계면세점은 3594억원의 재고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재고자산은 신라 6258억원, 신세계 3527억원이었다. 롯데보다는 규모가 작다.

◇'핵심 리스크’ 재고 관리 미숙...호텔롯데 상장 먹구름

롯데면세점은 이외에도 팬데믹 기간 고정적으로 들어간 면세점 운영비 역시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현재 호텔롯데가 운영하는 면세점은 위탁운영(부산점, 김해공항점)을 제외하고 총 18개다. 호텔신라는 합작사(HDC 신라면세점)를 제외한 8개, 신세계디에프는 3개다.

면세 실적 악화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숙원인 호텔롯데 상장도 한층 멀어졌다. 그룹의 주력사업인 면세사업부는 올 상반기에도 총 매출액의 81%를 차지했다. 기업공개(IPO) 기반을 닦기 위해선 면세점 실적과 경쟁력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롯데그룹은 2016년 금융위원회에 호텔롯데 증권신고서를 내고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그러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며 결국 한 달 만에 철회했다.

이후에도 중국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사태와 코로나19 등으로 상장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호텔롯데는 여행 수요의 점진적 회복을 근거로 향후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핵심 사업인 면세점이 탄력을 받는 시기에 IPO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내·외국인 여행수요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면세한도 상향 조치도 시행되는 만큼 실적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