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의 면세점·호텔 계열사 호텔신라(008770)롯데관광개발(032350) 김기병 회장 간 동화면세점을 둘러싼 주식매매대금 청구 파기환송심이 오는 22일 열린다.

빌려간 돈을 갚으라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변제능력이 없으니 동화면세점 지분으로 대신 가져가라는 김 회장의 민사 소송이 이미 5년을 넘긴 상황에서다.

19일 유통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민사2부가 지난 3월 31일 항소심 결과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데 따른 것이다.

소송전의 핵심은 동화면세점 지분이다. 양측 모두 해당 지분을 “안 갖겠다”며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장기간 적자가 쌓인 탓에 양측 모두 동화면세점 운영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은현

◇5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800억 갚아라” vs “주식으로 주겠다”

당초 김 회장 측에 유리했던 2심 재판 결과를 대법원이 뒤집은 만큼, 소요 기간과 관계 없이 호텔신라가 승소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호텔신라가 최종 승소할 경우, 김 회장은 기존 매각 금액 600억원에 이자 등을 더해 약 800억원을 내놓아야 한다. 신라 측은 이로써 대량의 현금을 확보하고 소송 기간 계속됐던 경영 불확실성도 해소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헌법상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2심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고 ▲김 회장의 변제능력이 충분하며 ▲관세법상 대기업인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 같은 중견·중소 면세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승소를 예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김 회장은 현재 코스피 상장사 롯데관광개발의 지분 30.65%를 갖고 있다. 지난달 10일에는 김 회장이 보유 중인 롯데관광개발 주식 240만주를 장외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가 보유한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려는 목적이다.

최근에는 이 리조트 토지 장부가가 1047억원에서 5680억원으로 5배 올랐다. 1980년 제주시로부터 공개 입찰로 부지를 산 후 40여년 만에 자산 재평가를 실시한 결과다. 롯데관광개발은 자기자본이 911억원에서 4170억원으로 늘고, 부채비율은 1358%에서 322%로 줄었다고 밝혔다.

반면 김 회장 측은 동화면세점 지분으로 대신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앞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 만큼 현금 대신 잔여 주식으로 갚겠다는 것이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주식으로 풋옵션을 걸었던 것처럼 주식으로 돌려주겠다는 게 김 회장 측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변제능력이 충분하다는 호텔신라 측의 주장에 대해선 “노코멘트”라고만 했다.

현행법상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데 대해서도 “운영을 못하는 것이지 취득이 불가한 건 아니다”라며 “갚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식으로 돌려주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이번 건이 단순 변제능력을 넘어 이부진 사장의 호텔신라와 김 회장 간 ‘자존심 싸움’이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주식매매 대금’이냐 ‘주식’이냐...쟁점은 ‘위약벌 규정’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위약벌 규정’이다. 이 규정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호텔신라는 ‘주식매매 대금’을, 김 회장 측은 ‘잔여 주식’을 돌려주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약벌(계약 위반에 대한 벌칙) 규정은 기존 매매 대상주식(19.9%)과 잔여주식(30.2%)을 합할 경우 전체 주식의 50.1%가 되도록 정해 무상 귀속 시킨다는 양측의 계약 내용을 지칭한다.

동화면세점 최대주주인 김 회장은 지난 2013년 면세점 지분 19.9%를 600억원에 호텔신라에 팔았다. 호텔신라는 3년 뒤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조건으로 하되, 채무 불이행 시 동화면세점 나머지 지분 30.2%를 호텔신라에 추가 귀속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했었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매매대금을 받지 못하고 그보다 가치가 떨어진 대상 주식과 잔여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매도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달리 2심 재판부는 “위약벌 규정은 호텔신라가 만들었기 때문에 (호텔신라가) 경영권 취득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사건의 주식매매계약은 자금 대여가 아닌 주식을 매매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봤다.

또 “피고가 매도청구에 불응해 동화면세점 주식을 재매입하지 않더라도 원고는 이에 따른 제재로 잔여 주식의 귀속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김 회장이 잔여주식을 위약벌로 귀속시킨 이상 추가 청구하지 않기로 약정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 이를 받는 것과 계약을 해제하는 것은 우위가 정해진 게 아니라고 판결했다. 경영권 취득 의사와 무관하게, 담보 주식을 받든 풋옵션을 행사해 현금을 돌려받든 호텔신라가 선택할 문제라는 것이다.

파기환송심 특성상 최종 결론이 곧바로 나오기는 어렵다. 쟁점 사안에 대해 호텔신라와 김 회장 측의 입장을 들은 뒤 향후 재판 일정을 거듭 거쳐야 한다. 양측 모두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는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도 눈독 들이던 동화면세점...위기 처하며 5년간 법정 다툼

동화면세점은 지난 1973년 국내 최초로 개점한 서울 시내 면세점이다. 1982년 롯데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롯데관광개발의 계열사다. 사명에 ‘롯데’라는 명칭이 들어가지만, 롯데그룹 정식 계열사가 아니며 롯데의 지분도 없다.

김 회장이 동화면세점 지분을 판 건 대규모 사업 투자로 유동성 위기를 맞이한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롯데관광개발은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이 무산됐고, 김 회장 측은 위기에서 벗어날 자금 수혈에 나섰다.

호텔신라도 면세사업 호황기에 경쟁사를 압박하기 위해 매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3년 뒤인 2016년 면세시장 내 경쟁 과열로 사업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중국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 감소 등 악재도 겹쳤다. 호텔신라는 풋옵션을 행사해 김 회장에게 지분 재매입을 요구했다.

반면 김 회장은 디폴트를 선언하고, 담보로 잡았던 동화면세점 지분을 대신 가져가라고 했다. 호텔신라가 잔여 지분을 받으면 지분율이 50.1%로 올라 경영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텔신라는 이를 거부하고 주식대여금과 이자 등을 현금으로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듬해 4월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