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서울 전경. /현대백화점

지난해 더현대서울의 개장으로 촉발된 백화점 3사의 영등포 상권 전쟁에서 현대백화점이 첫 승기를 잡았습니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6일 현대백화점이 여의도에 개장한 더현대서울은 매출 6637억원을 거뒀습니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은 5564억원,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3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죠. 가장 후발주자인 더현대서울의 10개월 매출이 터줏대감인 롯데, 신세계의 연 매출을 앞지른 겁니다.

◇150m 거리 둔 신세계 영등포점 vs 롯데 영등포점

영등포 지역에 백화점이 처음 생긴 건 1984년 신세계(004170)가 연면적 1만6272㎡(약 4930평) 규모로 영등포점을 개장하면서입니다.

신세계가 명동 본점에 이어 두 번째로 연 백화점으로, 당시로선 서울 서부 지역 최초의 백화점이었죠.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함께 개점식에 참석한 유일한 백화점 점포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1984년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개점식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참석한 이명희 신세계 회장(오른쪽). 뒷줄 왼쪽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세계

신세계의 텃밭이던 영등포에 1991년 5월 롯데쇼핑(023530)이 진출하면서 경쟁은 시작됐습니다. 신세계 영등포점 길 건너 150m 앞에 위치한 영등포역사에 들어선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국내 최초의 역사 백화점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신세계보다 규모가 2배가량 크다는 이점으로 서울 서남부 지역은 물론 인천, 수원 등지에서 고객들을 끌어모았죠.

개장 직후인 1992년 롯데 영등포점은 연 매출 2400억원으로, 신세계 영등포점(1830억원)을 단숨에 제압했습니다.

1994년 경방(000050)이 신세계백화점 바로 옆에 연면적 2만6645㎡(약 8060평) 규모의 경방필백화점을 세우면서 영등포 상권은 백화점 각축장이 됩니다.

결과는 롯데의 승리. 2006년 롯데 영등포점의 매출은 4800억원으로, 신세계 영등포점(1000억원)과 경방필(1350억원)을 합한 매출의 2배를 넘어섭니다.

◇롯데에 무너진 신세계, ‘타임스퀘어’ 손잡고 반전

반전의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경방이 경방필 옆 영등포 공장부지 36만여㎡(약 10만8900평)를 대규모 복합쇼핑몰로 개발하면서죠. 경방은 신세계와 손잡고 기존 신세계 영등포점과 경방필을 합쳐 4만3174㎡(약 1만3000평) 규모의 타임스퀘어를 2009년 개장합니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전경. /신세계

타임스퀘어는 일평균 20만 명의 방문객을 동원하며 개장 1년 만에 1조1000억원의 매출을 거둡니다. 이중 신세계 영등포점 매출은 3800억원으로, 롯데 영등포점(4900억원)과 격차를 크게 줄이게 됐습니다.

이후 4000억원 안팎의 매출로 경쟁하던 신세계 영등포점과 롯데 영등포점은 또 한 번 변화의 계기를 맞습니다. 2014년 2.3km 거리에 여의도 IFC몰이 개장한 데 이어, 2016년 현대백화점(069960)이 바로 옆 여의도 파크원에 쇼핑몰 운영권을 획득하면서죠.

마침 성장 속도가 줄었던 신세계와 롯데는 동시에 개편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특히 영등포역사와 점용 계약이 종료된 롯데는 2019년 신세계를 따돌리고 20년 계약을 따내며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연간 252억원씩 임대료를 내기로 한거죠.

2020년 새 단장을 완료한 신세계는 해외패션과 리빙을 앞세웠습니다. 루이비통을 비롯해 프라다, 구찌, 까르띠에, 불가리 등의 명품을 강화하고, 구관 전체를 리빙관(생활전문관)으로 개편해 1층에 식품관을 넣는 파격을 선보였습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점포명도 ‘타임스퀘어점’으로 변경했습니다.

영등포역사에 있는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전경. /롯데쇼핑

롯데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3년생)를 겨냥한 젊은 백화점으로 맞섰습니다. 20~30대 직원에게 기획을 맡겨 백화점 1층에 맛집과 카페, 지역의 유명 편집 매장을 들이고 힙한(멋진) 백화점이라는 의미를 담아 ‘힙화점’이라는 별칭도 붙였지요.

결과는 신세계 승. 그해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연 매출 4714억원으로 롯데 영등포점(3256억원)을 역전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외출이 줄고, 고급 소비가 늘면서 명품 구색이 많았던 신세계 영등포점에 더 사람이 쏠렸던 겁니다.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 영등포점은 국내 루이비통 매장 중 매출 1·2위를 다투는 알짜 매장으로 알려집니다.

◇더현대서울, 1년 만에 터줏대감 신세계·롯데 제압

2021년 2월, 영등포 상권은 더현대서울이 개장하면서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맞습니다. 축구장 13개 크기(영업면적 8만9100㎡)에 공간 절반 이상을 조경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한 더현대서울이 소비 트렌드 변화와 맞물려 그야말로 ‘대박’이 난 것이죠.

더현대서울 실내 공원 '사운즈 포레스트'.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은 사전 개장을 포함한 개장 일주일간 약 150만 명이 방문하면서 매출 372억원을 거둡니다. 이후에도 ‘오픈빨’은 쭉 이어져 그해 매출이 롯데와 신세계를 앞지르게 됩니다.

사실 현대백화점이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도 없이 백화점을 연다고 했을 때 유통업계에선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코시국’에 말이죠.

하지만 코로나에 발이 묶였던 소비자들이 더 넓고 쾌적한 백화점을 찾으면서 더현대서울은 ‘서울의 명소’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습니다. 증권가는 올해 더현대서울의 매출을 8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합니다.

유통업계는 영등포 상권을 광역상권으로 분류합니다. 하루 평균 15만 명이 드나드는 교통의 요지답게 서울 서남권은 물론 인천, 부천, 광명, 시흥까지 포용하기 때문이죠.

멀리서 찾는 고객들이 많은 만큼, 오래 체류하며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백화점이 앞으로도 유리할 거라는 게 유통가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등포 백화점 38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승자는 계속 바뀌었으니까요. 다음엔 누가 새로운 역사를 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