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두의 음파결제 기술을 접목한 롯데멤버스의 간편결제 서비스 ‘엘페이 웨이브’. /롯데그룹

유통업계가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본업과 시너지를 내거나 스타트업의 성장에 따라 지분매각 등으로 투자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특히 작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CVC를 통한 벤처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롯데, 3개월간 18곳에 투자...헬스케어·드론·프롭테크 등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2015년 설립한 투자회사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사명을 최근 롯데벤처스로 바꾸고,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까지 투자 범위를 확대했다. 이 회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주문으로 출범한 회사로, 신 회장이 50억 원가량의 사재를 출연했다. 현재 신 회장은 롯데벤처스 지분 19.99%를 갖고 있다.

롯데벤처스는 2018년 계열사와 조성한 272억 원 규모의 롯데스타트업펀드 1호를 시작으로 올해 7월 말 기준 1950억 원 규모로 11개 펀드를 운용 중이다. 식품, 유통, 화학·건설·제조, 관광·서비스·금융 등 롯데그룹의 4가지 주요 비즈니스 분야와 접점이 있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투자 대상이다.

롯데벤처스가 투자한 파블로항공. /파블로항공

올해 6~8월에만 총 18곳에 투자했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팡세(배양육), 라피끄(그린 바이오), 뉴처(콜드체인), 엔티(공유농장), 한우연(스마트 고기 숙성) 등 푸드테크 업체 5곳에 투자했고, 파블로항공(드론), 모비두(음파결제), 케어닥(시니어 헬스케어), 체카(중고차 통합인증 플랫폼), 에딕트콜렉티브(프롭테크) 등 헬스케어, 물류, AI, 스마트시티 분야에도 투자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 방점을 두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혁신적이고 능동적인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과의 협업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CJ·이랜드도 CVC 통해 투자 확대

신세계그룹은 작년 7월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50%), 신세계(004170)(30%), 신세계센트럴시티(20%) 등이 공동 출자해 만든 회사로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의 남편인 문성욱 신세계톰보이 대표가 이끌고 있다.

관심 분야는 일(워크), 헬스케어, 교육, 유통, 엔터테인먼트로 현재까지 동남아 차량 공유 기업 그랩, 패션 쇼핑몰 에이블리, 푸드 스타트업 쿠캣, 자동차 문화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 기업 피치스그룹코리아, 이너뷰티 브랜드 파지티브호텔, 농업 벤처기업 만나CEA 등 14곳에 투자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가 투자한 푸드 스타트업 쿠캣. /쿠캣

CJ(001040)그룹은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를 통해 ICT, 바이오, 콘텐츠, 식품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바로고(물류 플랫폼), 포티투닷(자율주행), 어메이즈VR(가상현실), 에이펀인터렉티브(3D 콘텐츠), 러셀로보틱스(물류), 에스알파테라퓨틱스(디지털 치료제), 쿠캣(푸드 콘텐츠), 번개장터(중고거래), 펫프렌즈(반려동물) 등이 대표적인 투자처다.

CJ그룹 관계자는 “특정 사업을 정해 놓고 투자하기보다는 기존 사업경쟁력 강화, 미래 성장동력 확보 등을 위한 연계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패션 중견기업 F&F(383220)도 올해 2월 벤처 투자 전문 자회사 에프앤에프파트너스를 출범했다. 채널옥트, 밤부네트워크, 와이낫미디어 등 디지털 영상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랜드그룹은 올해 1월 지주회사 산하 자회사로 이랜드벤처스를 설립하고 패션·유통·서비스·IT 분야의 스타트업을 찾는 중이다. 온라인 패션 쇼핑몰 무신사도 2018년 전문 투자사인 무신사파트너스를 설립하고 패션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다. 누적 투자 금액은 460억 원에 이른다.

◇우버 키운 구글처럼...”우리도 혁신 벤처 키워보자”

유통업계가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정보통신(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및 개인 맞춤형 쇼핑이 부상함에 따라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과 협력해 기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유망한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해 수익을 내려는 목적도 있다.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가상현실(VR) 콘서트·제작·유통 플랫폼 어메이즈VR. /어메이즈VR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 대표는 “과거 대기업 위주로 경제구조가 움직였다면, 최근엔 대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혁신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CVC를 설립하거나 직접 투자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미국의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중국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은 CVC를 통한 공격인 투자로 신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구글이 운영하는 구글벤처스는 우버, 에어비앤비, 슬랙, 블루보틀 등에 초기 투자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내 VC 투자금액은 중 CVC는 47%를 차지했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전통 VC는 투자수익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CVC는 전략적 요소를 중요하게 보는 게 차이점”이라며 “CVC의 참여는 전략적 투자자(SI)의 스타트업 참여 차원에서 협력의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