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근무 동안 휴식은 30분씩 두번, 정해진 주문건수를 시간 단위로 처리하는지 컴퓨터 시스템으로 감시 당하고, 배송기사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회사.’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올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직원을 ‘마치 오늘 시합을 앞둔 운동선수’처럼 채찍질 하는 아마존의 경영 방식은 이 회사를 27년 만에 매출 430조 원 기업으로 키워낸 원동력이다.

그러나 제품이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중시하는 가치소비의 부상과 노동권을 중시하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폭발적인 온라인 주문량 증가가 겹치며 아마존의 효율 만능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에 있는 아마존의 한 물류센터 내부. / 아마존 제공

올해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아마존은 북미 전역에 638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이 물류센터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탐사보도 전문매체 리빌(Reveal)이 잇따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부상을 입은 인원은 산업계 평균의 2배가 넘었다.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에서도 노동자들이 다치고 사망하는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속도에 과하게 집착하는 경영 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최신식 설비 투자와 직원들에 대한 급여 인상, 각종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 “아마존, 물류센터 직원 기계 취급”…부상사고 발생, 경쟁사 2배

지난달 WP는 미국 직업안전관리청(OSHA)의 내부 자료를 토대로 아마존의 북미 물류센터 638개의 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작년 기준 직원 100명당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 수가 5.9명으로 다른 물류센터(3.1명)의 두배 수준이었다고 보도했다. 월마트의 2.5명보다 훨씬 많다.

아마존의 부상사고 발생 인원 수는 2017년 6.5건, 2018년 6.9건, 2019년 7.8건으로 다른 기업의 2~2.5배 수준을 유지했다.

OSHA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부상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지만 WP는 전직 OSHA 직원과 아마존 근로자들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생산성 압박’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전했다.

아마존이 물품 분류, 포장, 배송하는 직원들에게 하루 수백건에서 수천건의 할당량을 주고 작업장 내 모니터를 통해 현재 작업량과 남은 작업량을 보여주는 식으로 시간당 작업량을 맞추도록 압박한다는 것이다.

아마존 물류센터 내에 도입된 로봇들. / 아마존 제공

미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리빌은 아마존이 효율성 향상을 위해 물류센터에 로봇을 도입한 뒤 근로자의 근무 강도가 오히려 급격하게 높아졌다고 전했다.

아마존 내부자료에 따르면 로봇을 도입한 아마존 물류센터의 100명당 부상 발생 건수는 2016~2019년 8~9건으로 로봇이 없는 물류센터(4~6건)에 비해 높았다. 아마존이 로봇 도입을 계기로 근로자들에게 시간당 상품 처리량을 3~4배 확대하라고 주문하면서 부상 위험과 스트레스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물류센터 작업자 안전을 위해 작년 10억달러(1조1500억원) 이상을 새로 투자했고 관련 인력도 6200명 이상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현재 일부 물류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근로자 안전관리 강화 프로그램인 워킹 웰(Working well)을 미국 내 물류센터 전체로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워킹 웰은 단순 반복 근무에서 오는 신체·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순환 근무를 시키고 명상, 스트레칭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아마존은 오는 2025년까지 사고발생건수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했으나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국 IT매체 마더보드에 따르면 아마존 물류창고에 워킹 웰을 소개한 팜플렛에 직원들을 작업장의 운동선수(industrial athletes)라고 묘사한 사실이 알려지며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팜플렛에서 아마존은 “경기를 위해 훈련하는 운동선수처럼, 작업장의 운동선수는 일에서 최대 성과를 낼수 있도록 신체를 준비해야 한다”고 썼다.

◇ 아마존 벤치마킹한 쿠팡도 ‘속도 집착’에 사고 잇따라

아마존의 물류센터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은 쿠팡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김범석 창업주가 강조하는 ‘소비자들을 와우하게 하라(Wow the customer·소비자들을 감동하게 하라는 뜻)’는 메시지는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의 고객에 대한 광적 집착과 일맥상통한다.

고객 만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품가를 낮추고 배송 속도를 당기는 과정에서 입점상인, 근로자와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진보당 주최로 열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현장 실태 폭로 기자회견에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1년 간 쿠팡에서 사망한 물류센터, 택배 노동자는 9명이다. 작년 10월 사망한 고(故) 장덕준(27)씨는 대구 칠곡물류센터에서 1년4개월 간 야간 노동을 하다 퇴근 후 자택에서 쓰러졌다.

유족은 장 씨가 하루 최대 11시간 근무를 했으며 7일 연속 일하기도 하는 등 과로했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월 과로 등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노동계에선 쿠팡의 생산성 지표인 UPH(Unit Per Hour)가 근로 강도를 높이고 근로자들의 스트레스 정도를 심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UPH는 개인 단말기를 통해 시간당 물품처리개수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이다. 쿠팡은 장씨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 받은 것을 계기로 UPH를 폐지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들은 “마치 기계 부품의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휴대폰을 비롯한 소지품을 반납한 채 센터에 들어가 8시간을 분류, 포장, 집하 등 단순 업무에 종사하고 1시간 정도 쉰다.

센터 규모에 비해 냉난방 시설과 휴게공간은 부족하다. 수도권의 물류센터에서 종종 일한다는 대학생 A씨는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가끔씩은 할만 하지만 정규직이 된다고 생각하면 까마득 하다”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속도에 대한 집착이 사고를 부른 것“이라며 “쿠팡이 혁신기업 이라고 얘기하는데, 근로자를 더 감시하고 인간을 부품화 하는 방향이 아닌지 이것을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