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상거래 기업 티몬이 올해 기업공개(IPO) 계획을 철회했다. 현 상태로는 대주주인 사모펀드(PEF)가 원하는 1조7000억~2조 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소비 전환을 앞당기며 유통업 패러다임을 바꾼 가운데 쿠팡, 이베이코리아 등 다른 이커머스와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만들어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포부다.

티몬 장윤석 신임 공동대표. / 티몬 제공

티몬은 지난 2월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3050억 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면서 “하반기 IPO를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최근 연내 상장이 아닌, 적정한 시기에 진행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작년 상반기 상장주관사 계약을 체결한 미래에셋증권과 계약을 해지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티몬 측이 “올해는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의 한 관계자는 “최근 회사의 경영진이 교체 돼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갖고 (상장을) 적당한 시기에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티몬이 올해 IPO 계획을 밝힌 이후 업계에선 기대보다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티몬은 2018년 5000억 원대 매출이 작년 1512억 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10년 소셜커머스로 함께 출발한 쿠팡이 2014년 직매입 기반의 빠른배송을 도입하며 작년 매출 13조 원 규모로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2015년 사모펀드(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지분율 98%)이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사업 확장 대신 내실 다지기에 집중한 것이 현 시점에선 패착이 됐다.

◇ 대주주, 기업가치 최대 2兆 희망...현 시점서 어렵다 판단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연내 상장'을 밀어붙였던 대주주 측은 원하는 기업가치 1조7000억~2조 원을 현 시점에서 IPO를 통해 인정 받기는 어렵다고 현실적으로 판단했다. 1조7000억~2조 원은 티몬의 작년 추정 거래액 4조~5조 원에 0.4배를 곱한 값이다. 통상 IB업계에서 쿠팡과 이베이코리아 등 국내 이커머스 업체의 기업가치를 매길 때 이런 산식을 적용한다.

대주주 측은 지난 2015년 그루폰으로부터 티몬 지분 59%를 인수할 때 책정한 기업가치(당시 8600억 원)의 2배~2.5배 수준에서 자금 회수(EXIT)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019년 롯데그룹과 티몬 매각 협상을 진행할 때도 1조7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제시했다. 당시 황각규 전 롯데그룹 부회장 주도로 양측이 가격 협상을 진행한 결과 인수금액이 1조 원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막판 최종 사인을 2주 앞두고 대주주 측이 가격을 20% 정도 높이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쿠팡이 미국 뉴욕 맨하탄 타임스퀘어에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기념해 전광판 광고를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문제는 대주주가 추진해온 내실 다지기 전략이 최근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쿠팡식 성장 전략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쿠팡은 지난 2014년부터 제품을 싸게 직매입해 빨리 배송하는 고비용 사업모델로 영업적자를 감수하고 매출을 불렸다. 같은 기간 티몬은 비용이 많이 드는 직매입 사업을 키우는 대신 기존에 강점을 가졌던 특가딜을 세분화 하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영업손실은 2016년 말 1580억원에서 작년 말 631억원으로 줄었지만 매출도 함께 감소했다.

티몬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 최초로 신선·생필품 묶음배송 서비스 슈퍼마트를 기획한 유한익 전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중추 멤버들이 회사를 하나둘 이탈하면서 성장 전략 밑그림을 짜는 사람이 사라졌다”며 “M&A 시장에 나온 중소 이커머스인 인터파크와 비교해도 티몬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야기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 거래소 상장 문턱 낮아졌지만 적자 해결 안되면 더 문제

한국거래소가 적자기업이 상장할 수 있는 길을 계속 터주고 있어 티몬이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에 상장을 신청 할 수는 있다.

가령 코스닥시장은 영업적자를 내더라도 △시가총액(공모주식수*공모가)이 300억 원 이상이고 매출액 100억 원 이상 △시가총액 1000억 원 이상이면 예비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에도 시총이 1조 원만 넘으면 다른 재무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증시에 상장할 수 있게 했다.

한국거래소 내부 모습 /한국거래소 제공

그러나 티몬의 경우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게 자금 유치 통로를 열어준다’는 한국거래소의 상장 특례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상장을 준비 중인 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는 작년 영업적자를 냈지만 매출이 두 자릿수 증가했고 오아시스마켓은 매출액 성장은 물론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티몬은 매출액이 2019년 1787억 에서 작년 1512억 원으로 줄었다. 영업손실은 2019년 726억 원에서 작년 631억 원으로 감소했지만 언제쯤 흑자를 낼 지 불확실하다.

상장 이후가 더 문제다. 거래소는 특례 상장을 한 기업에게 5년 동안은 매출액(코스피는 50억 원 미만, 코스닥은 30억 원 미만)과 법인세 비용 차감전 계속 사업손실(최근 3년 간 두번 이상 자기자본 50% 초과)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상장폐지를 유예해 준다.

문제는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인 경우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모두 유예 없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는 것이다. 티몬은 누적 영업적자로 작년 말 기준 결손금이 1조188억 원에 달한다. 거래소의 산식에 따른 티몬의 자본잠식률은 작년 말 기준 100%가 넘는다.

◇ 티몬, 경영진 교체·사업 방향성 재검토 등 체질개선 나서

유통업계에선 지난달부터 ‘대주주가 IPO를 통한 성공적인 자금 회수가 사실상 어려워지자, 회사 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6월 모바일 콘텐츠 제작업체 아트리즈를 인수하고 장윤석 창업주를 공동대표로 선임하면서다. 아트리즈가 운영하는 피키캐스트는 카드뉴스 형태의 가벼운 콘텐츠부터 모바일 예능, 드라마, 라이브 커머스를 제작한다. 상장을 수개월 앞둔 회사라고 하기엔 경영진을 교체하고 사업 방향성을 재검토 하는 등 변화의 폭이 컸다.

기존에 IPO를 진두지휘 하던 재무 전문가 전인천 공동대표는 장 공동대표가 선임되고 등기이사직을 내려놨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회사 측은 “등기이사직만 내려놨을 뿐, 공동대표직은 유지한다”고 밝혔으나 경영과 관련한 핵심 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 멤버에서 제외되면서 전 공동대표의 사내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전자상거래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방향성이 ‘수익성 개선’에서 ‘외형 성장’ 혹은 ‘성장 동력 확보’로 전환된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