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 월마트가 급부상하는 아마존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오픈마켓인 마켓플레이스에 제품을 등록한 판매자는 단 6명이었다. 월마트는 유통업 1위였지만 오픈마켓에서 아마존보다 많은 판매자를 확보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판매자들이 제품 등록도 편하고, 매출도 잘 나오는 아마존 대신 월마트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유통업계 전문가들이 온라인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회사를 향해 ‘월마트는 끝났다’고 비판과 조롱을 쏟아냈다.

작년 말 기준 월마트 마켓플레이스에는 7만명의 판매자가 등록돼 있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전문 분석업체 마켓플레이스펄스는 월마트의 입점상인 수가 내년 말 146%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답이 없어보였던 월마트의 오픈마켓 전략에 전환점이 된 것은 2016년 제트닷컴(Zet.com) 인수다. 월마트는 창업한 지 3년도 안된 스타트업을 33억달러(당시 3조6000억원)에 사들이면서 설립자인 마크 로레(Marc Lore)를 전자상거래 부문 최고책임자로 영입했다.

마크 로레는 오프라인 DNA로 똘똘 뭉쳐있었던 월마트를 전자상거래 회사로 탈바꿈 시킨 일등공신이다. 월마트의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상품 판매를 위한 재고 관리, 물류 거점으로 만든 것도 마크 로레의 전략 중 하나다. 마크 로레의 월마트 혁신 전략은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가고 있는 방향과 큰 틀에서 일치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평소 월마트 사례를 눈여겨 보며 지난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한 데 이어 2019년 미국법인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찾아가 만나는 등 관심을 갖고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그렉 포란 월마트 미국법인 최고 경영자와 만남을 가졌다.

16일 이마트가 네이버와 함께 국내 3위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확정지으면서, 정 부회장이 그리던 ‘한국의 월마트’ 모델에 성큼 다가섰다. 월마트가 부족한 오픈마켓 역량을 제트닷컴 인수로 보완하며 아마존과 경쟁구도를 형성했듯, 이마트는 오프마켓의 원조인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며 전자상거래 시장의 메기인 쿠팡과 경쟁할 기반을 마련했다. 4조원대에 달하는 재무적 출혈에도 불구하고 신세계그룹 내에서는 “이제서야 쿠팡과 경쟁할 환경이 갖춰졌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베이코리아는 작년 기준 거래액이 20조원으로 네이버쇼핑(27조원), 쿠팡(21조원)에 이어 3위다. 이 회사는 국내에 기반을 둔 이커머스 가운데 급성장한 쿠팡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01년 옥션, 2009년 G마켓을 인수하며 한국에 진출한 뒤 16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내고 있다. 작년 매출은 19% 증가한 1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38% 늘어난 850억원이다. 유료 멤버십 스마일클럽 회원 수는 작년 기준 300만명을 넘어 이커머스 업체 중 쿠팡의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470만명) 다음으로 많다.

이베이코리아의 흑자 비결은 쿠팡과 달리 오픈마켓 사업자로서 역할에 충실하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외부업체와 협력함으로서 비용 부담을 최소화 한다는 점이다. 가령 이베이코리아는 물류센터가 경기도 용인·동탄·인천 3곳 뿐이고 신선식품을 취급할 수 있는 콜드체인(저온물류) 시설이 없다. 쿠팡이 수천억원을 들여 전국에 물류센터를 짓는다면 이베이코리아는 물류는 CJ대한통운에 맡기고 홈플러스, 롯데슈퍼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매장을 거점으로 신선식품 당일배송을 한다.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 인수로 거래액이 단숨에 23조원대로 뛰어, 쿠팡을 누르고 2위 사업자로 발돋움 한다. 이베이코리아 거래액에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의 거래액 3조9000억원을 더한 수치다. 표면적인 거래액 증가 외에 이베이코리아가 보유한 30만명의 입점상인과 2억개 상품군, 20년 간 쌓아온 소비자 데이터베이스(DB), IT 인력을 확보한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SSG닷컴은 상품군 확대를 위해 오픈마켓 사업을 이제 막 시작했으나 쿠팡, 이베이코리아 등이 장악한 시장에서 차별점을 제공하지 못해 판매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대로 이베이코리아 입장에서는 부족했던 신선식품 경쟁력과 물류 인프라를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이마트의 전국 매장 수는 113개이고 이중 110개를 온라인 배송을 위한 PP센터(Picking&packing)로 활용하고 있다. 고객이 SSG닷컴에서 주문하면 인근 이마트 매장에 있는 직원들이 주문상품을 포장한 뒤 배송하는 구조다. 이베이코리아의 주문 건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물류 효율화 모델이 적용될 수 있다. 배송에 활용 가능한 오프라인 점포의 존재는 추가 입점상인을 유치하는 데 있어 쿠팡을 비롯한 다른 이커머스 사업자들과 다른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픽=이민경

그러나 막대한 인수금액에 따른 재무 부담은 향후 사업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마트와 네이버는 미국 이베이 본사가 제시한 5조원대에 약간 못 미치는 4조원대를 인수금액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투자금액을 제외해도 이마트 단독으로 3조원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동안 신세계그룹 인수합병(M&A)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금액이다. 이마트의 1분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 1조9000억원에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흐름 7238억원(작년 말 기준)과 비교해도 부족하다. 올해 추진할 계획이었던 모바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요기요와 스타벅스 잔여 지분 50% 인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부족한 자금 여력을 보완하기 위해 끌어들인 네이버가 악수(惡手)가 될 가능성도 있다. 네이버는 전자상거래 거래액 1위 사업자로, 3위 기업인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 결합 심사를 승인 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자산이나 매출이 3000억원 이상인 회사가 300억원 이상인 회사의 주식 20% 이상을 취득하는 경우 신고해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기업이 기업결합을 신고하면 공정위가 △기업결합 전후의 시장 집중 상황 △경쟁사업자 간 공동행위 가능성 △유사품 및 인접시장의 존재 여부 등을 1~3개월 간 검토한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으로 시장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고 판단하면 필요한 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있다. 시정조치 중 하나가 기업 및 지분 매각이다. 공정위는 2019년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요기요 매각을 명령한 바 있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으로 경쟁이 제한된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기업 결합을 통해 △거래분야 1위이고 △시장점유율이 2위인 회사와 25% 이상 차이나는 경우 등인데 전체 이커머스 시장을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네이버, 이마트, 이베이코리아 모두 ‘전자상거래’ 라는 같은 시장을 공유하고 있어 경쟁 제한 가능성이 짙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쿠팡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는 점이 변수다.

이번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롯데쇼핑은 자체 경쟁력 강화와 추가 M&A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의 작년 말 기준 거래액은 7조6000억원 규모로 유통 계열사 거래액 합산보다 약간 많은 수준이다. 서비스 개시 1년여가 지났지만 이커머스 분야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지난 3월 말 이베이코리아 출신 나영호 대표를 내정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