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랜드마크'를 꿈꾸던 아크앤북 시청점이 폐쇄됐다. 책과 문화를 즐기는 복합 공간 아크앤북은 입구 천장을 책 8000여권으로 터널처럼 꾸며 소셜미디어(SNS)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인기였지만, 코로나발(發) 경기 침체를 피해가지 못했다.

최근 영업을 종료한 아크앤북 시청점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 을지로1가 부영을지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한 아크앤북은 지난 16일 영업을 종료했다. 현재 잠실점, 신촌점, 이태원점 등 8곳만 남았다. 아크앤북 관계자는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어 재무 건전화를 위해 철수했다”고 밝혔다.

아크앤북 1호점인 시청점은 공간 기획 업체 오티디코퍼레이션(OTD)이 ‘사람과 책을 위한 공간’을 표방하며 지난 2018년 11월 문을 열었다. 서점 규모만 859㎡(약 260평)로 천장에 아치 형태로 쌓아 올린 책들이 동굴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베스트셀러를 앞세우는 대신 일상, 주말, 스타일, 영감 네 가지 주제에 따라 책을 진열하고 기념품을 판매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책 뿐만 아니라 맛집도 많았다. 가수 헨리가 운영하는 대만 식당 샤오짠,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 초밥집 스스시시, 가로수길 식물학 카페, 서촌 프랑스 레스토랑 플로이 등이 있었다. 이곳에선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식당이나 카페에 들고 가서 여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크앤북 시청점은 서점과 음식점 매출을 함께 올리며 영업 시작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주중 하루 평균 수백여명이 방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내방(來訪) 고객이 줄며 책과 체험을 강조하던 아크앤북은 위기를 맞았다. 오티디코퍼레이션은 지난 2019년 약 11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지난해 실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개별 (아크앤북) 매장들의 이익이 좋은 것 같진 않다”며 “서점과 음식점 영업이 같이 잘 돼야 매출이 나오는 구조인데 코로나로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최근 영업을 종료한 아크앤북 시청점

아크앤북이 있던 부영을지빌딩 지하는 원래 삼성화재 지역교육장으로 설계된 곳이다. 천장이 낮고 공간이 좁아 식당 같은 상업 시설이 들어오기 어려웠고 2015년부터 공실로 방치됐다. 부영그룹이 2017년 초 삼성화재로부터 4380억원에 매입했고 2019년 8월 정보기술(IT) 솔루션 기업 더존비즈온에 건물을 4500억원에 팔았다.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아크앤북 자리에 임대 공고를 냈다”며 “아직 어떤 업체가 들어올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티디코퍼레이션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지역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로 재탄생시키는 기업이다. 단순 건물 리모델링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는 업종과 콘텐츠로 공간의 가치를 높인다. 성수동 구두 공장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성수연방, 광화문 디타워의 파워플랜트, 플리마켓(벼룩시장) 띵굴 등이 대표적이다.

오티디코퍼레이션은 지난 2019년 말 기업공개(IPO)를 위해 주관사로 미래에셋대우와 대신증권을 선정했으나 코스닥 상장 일정이 중단됐다. 오티디코퍼레이션 관계자는 “흑자 전환이나 (성장) 포인트가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 시기에는 기대하기 어려워 기업 공개를 연기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