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의 야심작인 4성급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의 장부가가 1500억원에서 76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호텔 투숙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례적인 수준의 가치 절하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이민경

3일 이마트(139480) 계열사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작년 기준 레스케이프 호텔의 유·무형자산과 사용권자산에 대해 736억3865만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이에따라 이 호텔의 장부금액은 1498억원에서 762억원이 됐다.

손상차손은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산 가치가 장부가보다 떨어졌을 때 이를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상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은 향후 창출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 악화될 것 같다고 판단하면 해당 자산에 대한 손상검사를 진행하고 자산과 영업외비용에 반영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호텔업계는 평균 투숙률이 70~80%에서 30~40%대로 떨어지며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호텔신라는 작년 유·무형자산, 사용권자산 손상차손을 1003억원 새롭게 반영했고 호텔롯데도 손상차손 인식액이 2425억원에서 7937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두 회사는 호텔과 면세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국제 여행 중단에 따른 타격이 더 컸다.

레스케이프 호텔은 2018년 신세계그룹이 처음으로 선보인 독자 브랜드 호텔이다. 정 부회장은 2011년 신세계그룹에 직접 스카우트 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파워 블로거 김범수씨를 총지배인으로 앉히고 개관 한달 뒤 부인 한지희씨와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애착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개관 3년 만에 대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한 것에 대해 호텔업계에선 그만큼 초기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미래 사업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 호텔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성수기 투숙률이 경쟁호텔인 호텔롯데 L7 70~80%에 비해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급호텔이 아니고 수영장 등 부대시설이 부족한데도 전체 객실의 40%를 차지하는 스위트룸 숙박료가 1박당 30~40만원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서울 남대문 중심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임대하고 있어 연간 임차료만 100억원이 넘는 등 비용 부담이 상당했다.

레스케이프 호텔과 서울, 부산, 제주 등에 웨스틴·그랜드 조선,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을 운영하는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지난해 매출은 29% 감소한 1489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손실은 2019년 124억원에서 작년 706억원으로 확대 됐다. 같은 기간 영업으로부터 창출된 현금흐름은 138억원 흑자에서 313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최대주주인 이마트로부터 두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2800억원을 조달 받았다.

이마트는 올해와 내년 조선호텔앤리조트에 추가 투자는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호텔 측은 최근 숙박 예약 플랫폼 여기어때에서 일부 스위트룸을 20만원대에 판매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주말 투숙율이 70~80% 수준을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