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범람은 격랑을 만들었고 이제 변화를 피할 수 있는 분야는 없다. 그 격변의 파고(波高)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가 스토리 비즈니스 분야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콘텐츠 사업은 영화 제작사, 지상파, 케이블 방송과 같은 전통 미디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지배하던 전통적 구도는 사라지고 아마존, 애플 등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OTT(over-the-top) 등을 앞세워 스토리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신간 '스토리테크 전쟁'

이 책은 거대한 콘텐츠 산업의 지각 변동을 시시각각 추적해온 테크놀러지 전문 기자가 스토리 비즈니스의 새 질서를 입체감 있게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현대 스토리 비즈니스 전쟁을 ‘스토리테크 전쟁’이라고 진단한다.

‘스토리테크’는 스토리(story)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로 웹툰‧웹소설에서 영화‧드라마‧예능에 이르기까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전 과정을 둘러싼 기술적 진화를 뜻한다.

각종 통계가 스토리테크 전쟁의 발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 미디어 전문 조사 기관 닐슨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7월 미국 지상파·케이블 방송의 시청 점유율이 사상 초유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상파 20%, 케이블 29.6%를 기록했다. 반면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업체는 38.7%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 방송 서비스 구독을 취소하거나 전혀 가입한 적 없는 사람의 수가 2014년 1560만명에서 2021년 5040만명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미국 전통 미디어의 아성을 고작 20년 기업들이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기술과 데이터로 무장한 빅테크 기업들의 참전으로 스토리 비즈니스의 판도가 뒤바뀌는 가운데,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대명사 디즈니 역시 속도를 앞세워 ‘파괴적’인 체질 변화에 나서고 있다.

변방의 나라 한국도 웹툰, 웹소설 등 지적 재산권(IP)을 앞세운 ‘K-모델’로 이 격전에 뛰어든 상태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발하며 오프라인 세상이 셧다운 됐지만, 온라인 세상에선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K 콘텐츠가 가진 독창적인 매력에 주목했다.

디지털 세상을 강타한 스토리테크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고객의 시간과 주목(attention)을 가져오는 ‘리텐션(retention·고객 유지)’ 전략을 제시한다. 고객이 특정 서비스에 오래 머무를수록 제품 판매, 광고 비즈니스 등 기업의 수익이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숏폼 동영상 서비스업체인 ‘틱톡’의 돌풍의 비밀은 리텐션에 있다. 트위터의 ‘바인’, 비방디의 ‘스튜디오 플러스’ 등 여러 숏폼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틱톡이었다. 현재 틱톡의 월간 활성자 수(MAU) 10억명, 1인당 하루 평균 사용 시간 95분 정도다. 유튜브(74분), 인스타그램(51분)보다 월등히 높은 지수다.

앞으로 스토리테크 전쟁은 단순 고객의 체류 시간을 넘어 경험 만족 등 다방면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도 기존 콘텐츠의 제작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미국, 유럽 연합(EU) 등 여러 국가에서 테크 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스토리 전쟁’ 속에서 콘텐츠 기업이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분석틀을 바탕으로 얽히고설킨 이 전쟁의 본질부터 이해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