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크게 둔화하자 일부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5월 이후 대출 수요 증가가 예견된 만큼 금융 당국 눈치를 보며 조금씩 영업 문을 열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문제는 은행마다 주담대 취급 기준이 달라지고 한 은행 내 한 달 새 대출 방침이 바뀌는 등 소비자들 혼란이 커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출 총량 중심의 관리 정책 아래에서는 은행들의 잦은 대출 방침 변경 행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11일부터 서울시 토지거래허가(토허제)구역인 4개 지역(강남구·서초구·송파구·용산구)을 제외한 지역에서 유주택자 주택구입자금대출을 다시 내줬다. 신한은행은 앞서 가계대출 규제가 한창 강화되던 지난해 9월, 무주택자에게만 주택구입자금대출을 내주기로 방침을 세웠다. NH농협은행은 같은 날부터 비수도권 지역 주담대 최대 대출기간을 30년에서 40년으로 늘렸다. 농협은행도 지난해 11월, 수도권 및 비수도권 전 지역 주담대 최대 대출기간을 40년에서 30년으로 줄였는데 이를 일부 완화한 것이다.

일부 은행의 대출 규제 완화는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폭 축소에 따른 영업 재개로 풀이된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4000억원 증가했다. 2월 증가 폭(4조2000억원)과 비교해 대폭 줄어든 수치다. 은행권 주담대로 범위를 좁혀봐도 2월 한 달 동안 3조4000억원 늘었던 대출이 3월 들어 2조2000억원 증가하며 다소 진정세를 보였다. 이에 은행들은 서울 투기 위험 지역 혹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도권에 대한 핀셋 규제는 놔둔 채 지방 영업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다.

대출 방침이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은행마다 대출 취급 기준은 달라지는 중이다. 게다가 한 은행의 대출 방침이 금융 당국의 메시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례도 발견된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2월 유주택자가 수도권 소재 주택 구입 목적의 주담대를 허용했다. 이후 3월 들어 금융위원회가 금융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당부하며 ‘운용의 묘’를 언급하자 우리은행은 지난달 28일 토허제 지역에 한해 유주택자 주담대를 다시 중단했다.

이 같은 대출 방침 변경 양상이 이어지자 소비자들 사이에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재테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계대출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대출 규제가 일관성 없다” “정보가 뒤죽박죽이다”는 불만을 담은 게시물이 쉽게 눈에 띈다. 심지어 정부 정책에 불신을 품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토허제 규제는 잠깐일 뿐이라며 정부가 점찍은 가격 급등 지역이니 지금이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잦은 대출 방침 변경이 가계대출 총량 중심 규제의 부작용이라고 짚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 당국의 일괄적인 총량 콘트롤은 대출 금리 인상이나 대출 수요 공급 미스매치 등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은행이 주담대를 늘릴 때마다 자본을 더 확충하게 하는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를 도입하면 은행은 자본력에 따라 주담대 공급을 완만하게 조절할 테고 대출 방침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사례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