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재무적투자자(FI)와 ‘풋옵션 분쟁’을 일부 해소하면서 숙원이었던 지주사 전환에 다가섰다. 이 때문에 3세 경영권 승계도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 회장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한 바가 없어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신 회장 나이는 이미 70세를 넘겼으나 FI와 분쟁으로 약 7년을 보내면서 승계 작업은 시작하지 못했다. 장남인 신중하 교보생명 상무 등 아들들은 교보생명 지분을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승계에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보험업계에서 나온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신창재 회장과 풋옵션 분쟁을 벌여왔던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는 SBI그룹에 교보생명 지분 9.05%를 주당 23만4000원에 매각했다. 또 다른 FI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지분 4.5%를 같은 가격으로 신한투자증권 등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팔았다.
이번 매각으로 신창재 회장이 직접 보유한 지분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호지분이 늘었다. 이번에 지분을 매입한 SBI그룹은 교보생명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SBI그룹 지분 9.05%와 신인재·신경애·신영애씨 등 신창재 회장 가족 지분 5.12%, 신창재 회장이 직접 보유한 지분 39.11%(어펄마캐피탈 지분 매입 포함)까지 합하면 우호지분은 절반을 넘긴다.
현재 교보생명 지배구조는 복잡하지 않아 지주사 전환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신창재 회장은 교보생명 최대주주고, 교보생명은 교보증권·교보문고·교보자산신탁 등 13개 계열사 지분을 각각 절반 이상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인적분할 방식을 선택하면 지주사를 새로 만들고, 기존 교보생명 주주들은 각자 지분율대로 지주사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경영권 승계는 지주사 전환 이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남인 신중하 상무는 2022년 5월 교보생명 차장으로 입사한 뒤 현재 그룹의 디지털과 경영 전략 등을 담당하고 있다. 차남인 신중현은 교보라이프플래닛 디지털전략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지주사 전환 후 경영권 승계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다. 다만 신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전부를 상속받은 것처럼, 지주사 지분을 물려주는 것이 간단한 방법으로 꼽힌다. 지분 일부를 물려주며 계열사 경영을 맡기는 것이다.
신 회장도 교보그룹 창립자인 신용호 명예회장으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약 40%를 물려받아 2003년 기준 역사상 가장 많은 상속세인 1830억원을 교보생명 주식으로 현물 납부했다.
지분을 모두 증여한다면 내야 할 세금이 부담이다. FI가 교보생명 주식을 1주당 23만4000원에 매각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 회장이 보유한 지분 39.11%의 가치는 1조8700억원에 달한다. 두 아들이 신 회장의 지분 모두를 증여받으면 증여세만 1조1220억원(대주주 할증을 포함해 증여세율 60%)을 내야 한다. 앞으로 교보생명이 지주사 전환과 기업공개(IPO) 등을 거치며 주식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가정하면 증여세는 더 오를 전망이다.
두 아들은 승계 작업이 시작되면 우선 승계 비용부터 마련해야 한다. 증여받은 주식을 과세 당국에 담보로 제공하고 증여세를 나눠서 내는 연부연납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비상장사 주식은 담보로 인정되지 않는다.
3세들의 경영능력 입증도 절실하다. 신중하 상무는 데이터전략팀장을 역임하며 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중현 실장도 출범 후 12년 동안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교보라이프플래닛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보험업계에선 신 회장이 두 아들에게 보유 지분 일부를 증여하고 그룹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