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안을 마련 중인 금융 당국이 고위험, 고난이도 금융투자 상품 판매 규제 및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부터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제도 개선을 위해 다양한 해외 사례를 수집하고 금융연구원과 자본시장연구원 등 유관 기관으로부터 고위험 상품 판매 규제와 관련한 의견을 청취 중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학계와 유관 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해외에서는 어떤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는지 사례도 살피고 있다”고 했다.
제도 개선의 관건은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허용 여부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은행에서 ELS를 판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상당 부분 개인적으로 공감한다”며 “ELS뿐만 아니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투자 상품은 모두 위험하다.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고위험 상품의 은행 판매가 전면 금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회의론이 큰 상황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ELS 등 고위험 상품의 은행 판매 전면 금지는 고객 선택권이 침해될 수 있어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다”라고 했다.
금융권의 반발도 클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위는 2019년 12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은행에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 이상인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했으나, 은행권의 반발에 공모형 ELS를 담은 신탁 상품(ELT)은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은행은 증권사가 발행한 홍콩H지수 ELS를 신탁 계정에 편입한 형태로 고객에게 판매해 왔다. ELT 시장 규모는 40조원가량으로, 은행들은 ELT를 팔고 수수료를 약 1% 뗀다.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 4000억원에 이르는 만큼 은행들로선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인 셈이다.
금융 당국이 고위험 상품의 은행 판매를 허용하되 어디서, 누가 판매하는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 ‘거점 점포’ 등 일부 창구에서만 ELS 등의 상품을 판매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소규모 점포까지 판매하는 게 바람직한지, 혹은 PB(자산 관리) 조직이 있는 은행 창구를 통해 판매하는 게 바람직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판매 직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은행 직원의 절반 이상이 ‘파생상품 투자권유자문 인력’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주기적인 불완전판매 방지 교육 의무 이수 등의 요건이 추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의사결정, 핵심성과지표(KPI) 등 성과 보상 체계 결정 과정에서 내부 통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모범 규준을 손볼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은 비예금 상품위원회를 열고 금융투자상품의 선정→판매→사후 관리 전 과정을 심의하는데, 위원회 운영을 보다 체계화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의 제도 개선 논의는 금감원의 배상안이 나온 후 구체화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오는 11일 은행 자율 배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현재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이 제기한 민원과 관련해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해당 안건을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회부할 계획이다. 분조위에서는 민원인과 금융회사가 조속히 합의할 수 있도록 불완전판매 유형별로 책임분담 비율 등을 정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5개 시중은행이 판매한 홍콩 ELS 상품의 만기 도래 원금은 올해 들어 2월 말까지 1조985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9308억원이 상환되면서 손실액은 1조543억원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확정 손실률은 평균 53.1%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