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오는 28일부터 출생한 날을 기준으로 0살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1살씩 더하는 ‘만(滿)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만 나이를 써오고 있어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보험업계의 경우 따로 ‘보험 나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곳이 많아 상품 가입 전 나이 기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러 은행, 보험, 카드 업계 관계자들은 만 나이 사용을 통일하는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금융 거래나 금융소비자 불편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상당수 금융 관련 규정에서 만 나이를 쓰도록 명시하고 있거나, 민법상 기간 규정에 따라 나이를 만 나이 기준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은행권에선 고령금융소비자 보호 지침에서 만 65세 이상을 고령소비자로 정의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신용카드 발급 및 이용한도 부여에 관한 모범규준에 따라 만 18세 이상을 신용카드 발급 가능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 저축은행 계좌통합관리서비스 이용약관에선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지난해 12월 만 나이 사용 통일을 위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될 때 “금융 관련 법령 및 관련 규정 등에서는 만 나이를 명시하고 있거나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도 민법상 기간 규정에 따라 만 나이로 해석하고 있어 금융권 업무나 금융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금융협회장들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협회장 간담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태훈 은행연합회 전무,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 김용재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황정욱 저축은행중앙회 전무. /뉴스1

이에 따라 이번 조치는 법률·행정에 쓰이는 나이 계산법을 종전과 다르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 나이를 적용해 오던 것을 재확인하는 것에 가깝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은행의 경우 자체 내부 조사나 연령별 리포트에서 연 나이로 구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계약상 혼선도 줄어들 전망이다. 과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사례를 보면, 자동차보험 계약 시 연령한정운전특약의 적용 연령을 두고 분쟁이 있었다. 보험 약관상 만 나이를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에 대한 별도 설명이 없어 고객은 세는 나이로 해석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문에 실제 교통사고 시 보험금을 지급 받지 못하면서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만 유일하게 별도의 나이 체계를 가진 보험 업계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곳 역시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지만, 보험상품 가입 시 적용하는 ‘보험 나이’라는 개념이 있어 신규 상품 가입 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보험 가입 시 법규상 강행규정에 따라 만 나이를 적용하거나 개별약관에서 나이를 정하는 경우도 있어 가입 전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험 나이는 보험 계약 당시 실제 만 나이를 기준으로 6개월 미만의 끝수는 버리고, 6개월 이상의 끝수는 1년으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상의 생일이 1990년 12월 1일인 A씨의 상령일(보험 나이 기준일)은 생일을 기준으로 6개월을 더 하거나 뺀 6월 1일이 돼, 이를 기점으로 한 살이 올라가게 된다.

보험 나이가 증가하면 보험료가 높아지기 때문에 소비자는 보험 계약일이 만 나이 기준 6개월이 지나기 전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나은행 제공

일각에선 보험업계에서도 보험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도 혼선을 줄일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보험 나이도 만 나이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보험 나이가 합리적인 보험료 산정을 위해 생긴 만큼 예외로 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보험 나이는 보험 계약 과정에서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보험사나 계약자 중 손해 보는 쪽이 발생하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을 절충하려는 목적으로 생긴 개념이라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처럼 법정 만 나이를 쓰는 보험상품도 있고, 만 나이로 명시하지 않은 규정들에 대해서도 민법상 실제 해석은 만 나이로 하고 있어 별다른 혼란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개별약관에서 나이를 정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가입 전 반드시 세부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