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가 미국 중앙은행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시점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당초 많은 증시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테이퍼링 시기는 빨라도 내년이었으나, 미처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등장하며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테이퍼링은 통상 금리 인상의 사전 단계로 여겨진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완화에 나섰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13년 말 자산 매입의 축소를 점진적으로 시작한 뒤 2015년이 돼서야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양적완화 축소가 전세계 금융 시장에 미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조선비즈가 지난 6월 국내 13개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르면 내년 초 테이퍼링이 실시되고 내년 하반기 중 미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을 아직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이다.
지난 주 테이퍼링의 시계가 갑작스레 빨라진 이유는 바로 ‘고용’이었다. 그간 증권가에서는 물가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고용 시장의 회복이 더디다는 이유로 테이퍼링을 시기상조로 여겨왔지만, 미국의 7월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미 노동부는 지난 6일(현지 시각) 7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94만3000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치는 87만명이었다. 실업률은 5.4%로 16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전망치)는 5.7%였다.
앞서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7월과 8월의 신규 고용이 80만~100만명씩 늘어난다면 매달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을 줄이는 테이퍼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고용 지표는 월러 이사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면 연준은 대체 언제쯤 테이퍼링을 시작할까.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들은 양적완화 축소가 증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그 시기에만 주목하나, 일부 증시 전문가들은 테이퍼링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연준이 과거 2008년 양적완화를 실시할 때는 처음부터 그 기간을 예고하고 시작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 영향으로 양적완화의 축소 시점이 도래하자 자산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이번에는 그 같은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테이퍼링을 여러 단계로 쪼개서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퍼링으로 인한 자산시장의 충격을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이라고 한다. 선진국의 테이퍼링이 신흥국의 통화 가치와 증시 급락을 불러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이 전세계에 풀린 달러화를 회수하면, 신흥국에서는 자금 유출이 일어나며 미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 환율이 급등(자국 통화 가치 급락)하게 된다. 이는 신흥국 증시에 굉장한 타격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연준이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테이퍼링을 점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최 부문장의 설명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도 테이퍼링은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 본부장이 주목한 부분은 ‘역레포’다. 역레포란 연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회수해가겠다는 합의 하에 금융 상품을 머니마켓펀드(MMF)나 은행 등에 맡기고 현금을 가져가는 것이다. 즉, 시중은행의 현금이 중앙은행에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 부양책이 시행되며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올해 3월부터 연준의 역레포가 크게 늘었으며 한도도 길어졌다”며 “특히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역레포 금리를 올림으로써 초과 유동성을 더 흡수하고 있어, 엄밀히 말해 테이퍼링은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더 나아가 앞으로 연준이 시행할 테이퍼링이 ‘2차 테이퍼링’에 가깝다고 말했다. ‘1차 테이퍼링’이 이미 시작된 만큼 그 다음 조치의 시기보다는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본부장은 연준이 아무리 늦어도 내년 1분기에는 주택저당증권(MBS)과 국채의 매입을 종료하고 유동성을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