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日서 개인 투자자 증시 거래대금 급증
주가 오른 종목 집중적으로 매수… "자산버블 때 패턴"
"증시 거품 빠지면 세계경제 더블딥 우려"
지난달 미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렌터카 대기업 허츠(Hertz)가 신주를 발행해 10억달러(1조2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12일(현지시각) 밝혔다.
파산 신청한 기업이 증시에서 자금 조달에 나서는 황당한 상황에 인터넷에선 'IPO(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가 아니라 IBO(기업파산공개·Initial Bankruptcy Offering)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허츠의 자신감은 최근의 주가 급등에서 비롯 됐다. 파산 신청 직후 하한가를 기록했던 허츠 주가는 6월 8일까지 장중 16배까지 치솟았다.
주가 상승의 원동력은 '로빈후드 투자자'라고 불리는 미 증시의 개미(개인 투자자)들이다. 미국의 무료 주식거래 앱인 로빈후드를 통해 허츠 주식을 거래한 사람은 8일 기준 14만명으로 일주일 만에 2.3배 급증했다.
전세계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의 주식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이 이끄는 증시 상승이 실물경제와 괴리돼 있어, 자산 버블이 꺼짐과 동시에 세계 경제의 더블딥(double dip·반짝 반등했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현지시각) CNBC에 따르면 미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의 거래가 급증하면서 주당 1달러 미만의 이른바 동전주 29개의 거래량이 6월 들어 평균 80% 가까이 증가했다. 파산신청한 백화점 체인 JC페니도 거래가 급증한 종목 중 하나다.
일본에서도 5월 넷째주에 개인 투자자의 주식매입액이 3조3900억엔(38조2000억원)으로 급증한 뒤 6월 첫째주에도 3조3000억엔을 넘었다. 코로나로 증시가 하락한 3월 둘째주 이후 최대 규모다. 온라인 주식거래를 중개하는 증권사를 중심으로 '생애 첫 계좌'를 트는 20~30대가 늘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확산으로 급락한 주식을 매수하려는 개인 투자자들이 급증했다. 코스피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개인의 거래 비중이 4월 기준 68.4%로 역대 최고에 달했다. 빚내서 주식을 투자하거나 해외주식을 처음 사는 사람이 증가한 현상도 눈에 띈다.
5월 이후 개인 투자자의 주식 매수 패턴을 보면, 주가가 오르는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는 경향이 눈에 띈다. 그동안 개인이 '오르는 종목은 팔고, 떨어진 종목을 사는' 패턴을 보여왔다면 이번에는 주가가 오를 때 상승세에 합류 하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과거 주식시장에 거품이 꼈던 1989년과 1999년에 나타났던 현상이다.
미국에선 이런 이들을 포모족(FOMO·Fear Of Missing Out·주위로부터의 고립, 뒤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기업 주가가 3월에 바닥을 찍고 상승할 때 주식을 매수하지 못해 상승세에 올라타지 못했던 이들인 그런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코로나 국면에서 강세를 보인 아마존, 애플 등 기술주를 바삐 사들이고 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지만 달리 투자할 곳이 없을 때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세계 경제에 더블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실물경제 흐름과 상관없이 주식시장으로 과도한 자금이 몰렸는데,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이 악화되며 주가에 낀 거품이 꺼질 경우 개인 투자자들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주가 상승세에 대해 유명 투자가들은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월가 대형 운용사인 그랜섬 마요 앤 반 오털루(GMO)의 공동창업자인 제레미 그랜섬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시장은 일방적인 낙관주의에 빠져있는 것 같다"며 회사가 주식 보유 규모를 줄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