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러스 펜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7년 아이폰을 처음 공개하던 날,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펜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당시 PDA(개인용 디지털 단말기), 게임기 조작 등에 쓰였던 전자펜을 깎아내린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삼성전자가 S펜을 탑재한 갤럭시노트를 출시한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펜에 열광하는 소비자층이 생기며 7년간 6000만대가 팔렸다. 최근에는 10m 이내에서 마치 리모컨처럼 활용할 수 있는 기능까지 등장했다. 애플도 잡스가 사망한 이후 슬그머니 고집을 꺾고 2015년 아이패드용 '애플펜슬'을 내놨다. 결국 아이폰에까지 펜슬을 탑재할 것이란 전망도 끊이지 않고 있다. LG전자·마이크로소프트·화웨이도 속속 펜을 내놓으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인 '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마트폰용 터치 펜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며 일반 펜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터치펜,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
스마트폰용 터치 펜은 작동 원리에 따라 감압식, 정전식, 전자기 유도방식으로 나뉜다. 감압식(感壓式)은 말 그대로 누르는 힘을 화면이 인식하는 방식이다. PDA 등 초창기 터치 스크린기기에 주로 쓰였던 기술이다. 정전식(靜電式)은 전기를 감지하는 원리다. 화면 위에 전기가 통하는 화합물을 입혀 전류가 흐르게 한다. 여기에 손가락·전자펜처럼 전기가 통하는 물질이 닿으면 화면 위를 흐르던 전자(電子)가 끌려오고 화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는 것이다. 정전식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해 글씨를 쓰거나 조작할 때 쓰이는 방식이다.
전자펜 중에서는 애플펜슬이 정전식을 한 단계 진화시킨 능동 전기방식을 쓰고 있다. 애플펜슬은 자체적으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킨다. 작은 면적에서 다량의 정전기가 발생하는 것을 인식해 '손가락이 아닌 전자펜'이라고 판단한다. 애플 아이패드 프로의 화면은 애플펜슬의 접촉 면을 초당 240번가량 스캔한다. 애플펜슬에는 두 개의 기울기 센서도 내장돼 있다. 다만 펜에 배터리가 들어가는 만큼 삼성의 S펜보다는 다소 크고 무거운 단점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태블릿PC인 서피스의 펜도 이 방식을 이용한다.
반면 삼성의 S펜은 전자기 유도방식이라는 최신 기술을 사용한다. 화면 밑에 '디지타이저'라는 자기장 발생 장치가 탑재돼 있다. 길이 108㎜, 무게 3g의 펜 내부에는 코일이 감겨 있다. 코일이 감긴 펜이 화면 위에 오면, 자기장과 반응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화면에 펜을 가까이 가져가기만 해도 이를 감지해 작은 점이 화면에 뜬다. 이 과정이 1초에 수백번씩 반복되면서 펜의 위치와 각도, 필압(筆壓)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 같은 원리 덕분에 물속에서도 필기가 가능하다. 웹툰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태블릿도 같은 원리의 기술을 적용한다. 그만큼 정밀한 표현에 강점이 있는 것이다. 삼성은 이 방식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그래픽 전용 태블릿PC제조사인 와콤사와 제휴를 맺고 있다.
S펜은 2011년 처음 출시할 때만 해도 펜촉의 두께가 1.6㎜로 일반 펜보다 굵었다. 하지만 기술이 점점 발전해 2016년 노트7부터는 0.7㎜로 가늘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반 볼펜 수준의 펜촉 지름을 구현해 실제 펜과 유사한 필기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압도 4096단계까지 다르게 인식한다.
◇터치펜으로 사진 촬영, PC 제어까지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5인치 이상 대화면 폰의 시장 점유율이 2016년 53.5%에서 2022년에는 80.3%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펜 시장 역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은 세계 전자펜 시장이 2016년 3억2679만달러(약 3660억원)에서 연평균 14.5% 성장해 2023년에는 8억1578만달러(약 9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본격적으로 '펜 전쟁'이 시작되면서 IT(정보기술) 업체들은 필기감 향상뿐 아니라 펜의 쓰임새를 다양화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9에 블루투스 무선 통신이 가능한 S펜을 탑재했다. S펜의 버튼을 누르면 원격에서 카메라 촬영, 프레젠테이션 조작이 가능하다.
애플은 디자인 전문가용부터 학생 교육용까지 애플펜슬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그동안 애플펜슬은 고가 모델인 아이패드 프로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지난 3월 출시한 299달러(약 33만원)짜리 교육용 아이패드에도 애플펜슬을 지원했다. 어린 학생들이 종이 노트와 필기구 대신 태블릿과 터치 펜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