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관세 압박 속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대만 TSMC가 ‘트럼프 맞춤형’ 대응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이사회 회의를 처음으로 미국에서 개최할 예정인 데다 반도체 관세 부과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미국 내 공장 추가 설립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오는 12일 사상 처음으로 이사회 회의를 미국에서 연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에 발맞춰 TSMC의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이 미국 반도체 제조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다. TSMC는 현지 회의 후 이사회 멤버들에게 애리조나 팹의 운영 상황을 직접 점검하게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애리조나 팹은 TSMC가 해외에 처음 지은 첨단 공정 제조공장으로, 올 1분기부터 4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 웨이퍼를 대량 양산할 예정이다. 현재 애플과 엔비디아가 이 공장의 최대 고객사다. TSMC는 올해 중 첫 번째 팹에서 월 3만장 규모의 웨이퍼를 생산한 뒤, 3나노 이하 첨단 공정을 적용한 두 개의 추가 팹을 각각 올해와 내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TSMC가 미국 우선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를 위해 TSMC에서 수입되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는 법인세를 21%에서 16%로 낮추는 대신 관세를 높여 그 차이를 메우겠다는 전략을 구상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열린 공화당 하원 정책회의 연설에서 “대만이 반도체 시장의 약 98%를 차지하고 있다”고 과장하며 “우리는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는데, 이미 수십억달러를 보유한 그들에게 바이든의 프로그램처럼 수십억달러를 지원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센티브이며, 그 인센티브는 25%, 50%, 심지어 100%의 세금을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TSMC가 650억달러(약 95조3800억원)를 투자해 미 공장을 짓는 대가로 보조금 66억달러(약 9조6800억원)와 대출 50억달러(약 7조3300억원)를 제공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TSMC가 미국 내 제조 공장을 4개 이상으로 확대하거나 첨단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생산 시설을 추가로 설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TSMC 애리조나 팹에서 생산된 웨이퍼는 후공정을 위해 대만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TSMC가 미국 내 생산 능력을 확장하면서 후공정 투자 계획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웨이저자 TSMC 회장은 “고객 요구에 따라 해외 생산 시설을 구축할 것이며, 고객 수요가 많고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추가 공장 설립도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미국 내에서도 TSMC를 비롯한 대만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의 스티븐 에젤 글로벌 혁신정책 담당 부사장은 “대만산 반도체의 관세를 100% 인상하고 다른 국가의 반도체에는 더 낮은 관세를 부과하면, 대만 기업들은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길 것”이라며 “이는 대만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 유치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소비자 비용을 증가시키고 자국 기술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며 나아가 글로벌 무역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