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놓인 롯데그룹의 경영 활동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가운데 주요 계열사 사장단은 출국 금지로 발이 묶였다.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여파로 11일 구속됐다. 신 회장의 핵심 측근인 이인원 부회장,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 역시 10일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컨트롤 타워 붕괴는 주요 사업의 차질로 이어졌다. 역점 사업이던 호텔롯데의 상장이 무기한 연기됐고, 숙원 사업인 롯데월드타워 완공도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롯데케미칼(011170)은 13일 미국 화학업체 액시올(Axiall Corporation)사 인수를 포기했다. 그룹 핵심사업부터 신성장 동력까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 호텔롯데 상장 철회 신고액시올 인수계획 무산

호텔롯데는 13일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호텔롯데는 “투자자 보호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무기한 공모 연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표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의 동의를 거쳐 잔여 일정을 취소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검찰 수사 등 대내외 상황을 볼 때 오는 7월로 잡았던 상장 예정일까지 필요한 세부 절차 이행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공모가 산정이 부담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상장을 강행할 경우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롯데그룹 정책본부 구조도.

완전히 상장을 포기하진 않았다. 이 관계자는 “호텔롯데의 상장은 일본 주주의 지분율을 낮추고 주주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핵심 사안이다. 주관사, 감독기관과 향후 방안을 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롯데그룹은 1년여의 검토를 거쳐 추진했던 미국 화학회사 인수도 포기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액시올사 인수를 위한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계획을 철회한다”고 13일 공시했다.

롯데케미칼은 관계자는 “액시올사를 인수하기 위해 추가 제안을 통해 노력했지만, 인수 경쟁이 과열됐고 롯데가 직면한 어려운 국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의 구속으로 오는 12월 22일 완공 예정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안갯속에 빠진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모습.

◆ 롯데 상장사 주가 줄줄이 추락신용등급 악영향

핵심 사업 계획이 줄줄이 철회되면서 그룹내 상장사들의 주가가 줄줄이 추락했다.

13일 하루만에 롯데손해보험(000400)이 6.4% 하락했다. 롯데제과가 6% 가까이 내렸고, 롯데쇼핑(023530)롯데하이마트(071840)도 각각 5.4%, 4.4% 하락했다. 롯데케미칼, 롯데칠성(005300), 롯데푸드, 롯데정밀화학, 롯데관광개발(032350)등 다른 상장 계열사들의 주가도 일제히 떨어졌다.

이날 롯데그룹 상장사 9개의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24조2319억원으로 전 거래일(10일, 25조4441억원)보다 1조2122억원 줄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1조원 넘게 날아간 것이다. 이달 감소분은 2조1100억원이 넘는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2016년 6월 10일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1층.

주요 계열사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재무 부담이 가중되거나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지난 5월 31일 롯데쇼핑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하면서 홈쇼핑 사업부문의 영업정지(방송 중단)로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커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 조달 비용도 커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롯데물산과 롯데칠성음료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애초 계획했던 회사채 발행을 연기한 상태다.

'면세점 세계 1위' 목표 좌초 위기홈쇼핑도 흔들

롯데면세점, 롯데홈쇼핑등 주요 계열사들은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빠졌다.

롯데면세점은 연말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서 잠실 월드타워점 재승인에 실패할까 우려하고 있다. 황금시간대 6개월 방송 중단 처분을 받은 롯데홈쇼핑의 실적 전망도 어둡다.

2016년 6월 10일 오후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마치고 롯데호텔을 나서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11월 서울 잠실 월드타워점의 특허권을 잃었다. 연간 6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월드타워점은 롯데월드타워 완공에 맞춰 1조원대 매출을 기대하던 매장이다. 특허권 재승인에 실패하면 ‘세계 1위 면세점’이란 목표 달성은 요원해진다.

롯데면세점에 문제가 생길 경우 호텔롯데 전체 실적이 흔들릴 수 있다. 작년 기준 롯데면세점 매출액은 호텔롯데 전체 매출액의 84%에 이른다. 검찰은 롯데면세점 입점 대가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20억원가량을 받은 혐의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수사 중이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10일 검찰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인허가 과정과 중국 홈쇼핑업체 럭키파이의 고가 인수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다. 방송 중단으로 인한 롯데홈쇼핑의 매출 손실은 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전문가는 “롯데그룹 전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도 어려워졌다. 협력사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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