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미국출장중 급습당한 롯데…"앞길이 안 보인다"

입력 2016.06.10 16:42 | 수정 2016.06.10 18:46

10일 롯데 본사 사무실이 있는 롯데쇼핑센터 빌딩 24층에서 검찰 관계자가 압수수색물을 담기 위한 박스를 옮기고 있다. /박원익 기자
10일 아침 8시,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센터빌딩 정문으로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찰 수사관 200여명이 여러 대의 승용차와 버스에 나눠 타고 줄지어 도착했다.

“지금부터 압수수색을 시작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검찰 수사관들이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다. 수사관들은 지체하지 않고 롯데쇼핑센터 빌딩 26층의 신동빈 회장실, 정책본부 운영실, 25층의 정책본부 지원실, 24층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으로 올라갔다.

롯데 임직원들의 업무를 중단시키고 사무실 밖으로 모두 내보냈다. 수사관들은 회계 장부, 컴퓨터 등을 압수물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검찰청으로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현재 북미 출장 중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신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전격적이고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오후 12시 30분쯤 압수수색 결과물을 담기 위한 빈박스 10여개가 25층과 26층으로 옮겨졌다. 롯데 사건 담당 변호사들이 수시로 건물에 드나들었다. 취재진 수십 명이 1층 출입구에 모여 검찰 압수수색 과정을 취재했다.

롯데 임직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찰이 압수물을 옮기는 장면을 지켜봤다. 한 롯데 임원은 “너무 놀랍고 큰일이라서, 말이 안 나온다. 앞이 깜깜하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10일 출입이 통제된 롯데쇼핑센터 빌딩 24층. /박원익 기자
국내 재계서열 5위인 롯데그룹이 창업 이래 가장 큰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7일 이후 불과 나흘 만에 신동빈 회장과 신영자 이사장의 집과 사무실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10일 하루에만 롯데 핵심 계열사 사무실 등 17곳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연루된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는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다.

신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정운호 로비 사건에 연루,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됐다. 신 이사장의 자택과 사무실 역시 지난 7일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시작되자 롯데 임직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소공동 롯데 본사는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 신동빈 북미 출장 중 급습 임직원 망연자실

검찰 압수수색은 신동빈 회장이 북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현재 신 회장은 스키협회 행사와 미국 석유화학 업체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미에 있다고 그룹 관계자들은 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스키협회 일정으로 멕시코를 먼저 방문했다가 현재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에선 엑시올사(社) 기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엑시올사는 롯데케미칼이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미국의 석유화학 기업이다.

소공동 롯데호텔 전경. / 연합뉴스 제공
신 회장의 핵심 측근인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도 신 회장의 출장에 동행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검찰에게) 급습을 당한 것 같다. 검찰의 압수수색 여파로 신 회장이 귀국 일정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일 롯데그룹의 ‘원리더’ 지위를 다졌던 신 회장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작년부터 계속된 경영권 분쟁이 잦아들면서 가까스로 원 톱 리더로 올라섰지만, 검찰의 칼끝이 신 회장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신 회장과 경영권을 다퉜던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지난 8일 입국,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간호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검찰 압수수색 전날인 지난 9일 오후 미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작년말 부터 롯데 그룹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다. 감사원, 국세청에서 자료를 받아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정황을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롯데홈쇼핑의 케이블채널 재승인 과정이 불공정했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미래부도 롯데홈쇼핑에 대해 지난달 ‘프라임 타임(오전과 오후 8~11시)’ 6개월 방송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국세청은 지난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직후 호텔롯데, 대홍기획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서울 소공동 롯데 본사 입구. 외부 출입을 차단,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박원익 기자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대상 계열사가 많아 특수4부(부장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를 모두 투입, 초대형 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만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수사팀이 충분한 내사를 거쳐 압수수색을 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돼 9일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일단 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권과 군,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금품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기업 수사다. 정치권 로비 등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가 조성한 비자금의 용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서울 소공동 롯데 본사 입구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박원익 기자
롯데의 한 직원은 “좋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이, 한꺼번에 일어나 정신이 없다. 심란하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관광객, 일반 시민들도 지나다니는 곳이라 영업에 지장을 줄까 걱정된다. 빨리 사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단기간에 끝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 노병용 대표 구속 가능성 신영자 이사장도 형사처벌 위기

롯데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많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가 구속될 가능성이 커졌고,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역시 형사처벌 위기에 놓였다.

노 대표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9명의 롯데 임직원들은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영장심사를 받았다. 영장 실질심사 결과는 오후 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노 대표에 대한 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노 대표가 구속되면 올해 연말 완공 예정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16년 6월 2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담은 상자를 옮기고 있다. / 조선DB
롯데물산 관계자는 “노 대표가 결재 최종 책임자다. 진행 중인 건설 공사에 당연히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전날 오전 임원들과의 미팅에서 “4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결과가···”라며 깊은 회한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대주주 일가가 정운호 비리 의혹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는 것도 부담이다. 신 이사장은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대가로 정운호 대표로부터 2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호텔롯데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롯데면세점에 문제가 생기면 호텔롯데의 상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는 7월로 이미 한 차례 연기된 호텔롯데 상장 일정도 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수통 출신 중견 변호사는 “검찰이 신동빈 회장의 집과 집무실까지 압수수색한 것을 보면 수사의 최종 목표는 신동빈 회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도 “신동빈 회장을 직접 겨냥한 수사로 보인다.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한 해 매출 83조원, 계열사 80개, 국내 12만명, 해외 6만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이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격랑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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