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지난 2022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근로자 사망·중상 사고인 산업재해는 처벌 사례가 나오면서 기업들도 안전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일반 시민 사망·중상 사고인 시민재해는 적용 범위가 좁아 안전 확보에 ‘빈틈’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대재해법 시행 3년… 시민재해 적용은 1건뿐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3년이 넘도록 중대시민재해가 실제로 적용된 사건은 청주 오송지하 차도 참사 1건뿐이다. 이는 2023년 7월 청주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1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침수는 인근 하천 둑이 부실 공사로 무너지면서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지난 1월 이범석 청주시장과 이상래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중대재해법상 ‘시민재해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최근 발생한 ‘창원NC파크’ 사고도 중대시민재해 적용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사고는 지난달 31일 창원NC파크에서 무게 60㎏가량의 외벽 구조물이 추락해 아래에 있던 야구팬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것이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수사 중인데 중대시민재해 적용 여부도 살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되지 않은 사례도 많다. 2022년 10월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이 희생된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대표적이다. 또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에서 싱크홀(땅꺼짐)이 발생해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숨진 사고에도 중대시민재해는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중대재해법이 시민재해 범위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해 발생한 재해’만 시민재해로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도’ ‘차도’ ‘활주로’ 등에서 사망자가 발생해도 시민재해로 인정되지 못한다.
◇ 시민단체 “인도·차도·활주로 사고도 포함해야" vs 정부 “신중하게 접근해야”
이에 따라 시민단체 등은 중대시민재해 적용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재해 범위가 제한적이라 재해 예방에 문제가 있다”며 “시민 안전이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전 전문가인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도 “현행법상으론 부실시공으로 아파트·오피스텔에 살다가 발생한 안전사고, 학교 건물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등도 중대시민재해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중대시민재해의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대시민재해 적용 범위를 확대하려면 중대재해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는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산업재해도 형사처벌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시민재해도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처벌을 동반하는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보다는 사고 예방과 대응 방안에 집중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