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의 재판 첫 준비절차가 기밀 열람이 제한 문제로 무위에 그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허경무·김정곤·김미경 부장판사)는 14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으나, 혐의를 인정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날 피고인들은 출석 의무가 없어 출석하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은 “수사 기록을 열람·등사하겠다고 검찰에 신청했는데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서약서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변호인은 “서약서에는 ‘기밀을 누설하면 반국가적 행위임을 자인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겠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며 “등사를 제한하는 자체가 형사소송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대통령기록물이나 국방부 생성 기밀인 경우 검찰에서도 자유롭게 열람·등사를 할 권한이 없다”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재판부가 허락하면 전향적으로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열람·등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최소한 열람이라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첫 공판준비기일에는 검찰이 공소사실의 요지를 설명하면 피고인 측이 이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증거조사를 계획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날은 이같은 문제가 불거지며 진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재판부는 “공소사실 요지와 변호인 의견을 듣고 쟁점을 정리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다음 달 26일을 2회 공판준비기일로 지정하고 재판을 끝냈다. 또 “약간 숨을 고르는 단계가 숨을 멈춰버려 깨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는 사건”이라며 “재판을 빠르게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2019년 11월 탈북자 합동 조사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불법·강제적으로 북한으로 보냈다는 의혹이다. 정 전 실장 등은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내도록 공무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 전 실장 등은 어민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었고, 이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당시 결정이 적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