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곡동 전자발찌 살인사건’의 피해 유가족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 박성철 변호사(사법연수원 37기)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법무법인 지평

“범죄자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위험 관리 의무’를 다시 한번 짚었다는 점에서 뿌듯합니다.”

서울 ‘중곡동 전자발찌 살인사건’의 피해 유가족을 대리해 최종 승소를 거둔 법무법인 지평 박성철 변호사(사법연수원 37기)는 지난 5일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대법원으로부터 중곡동 전자발찌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항소심 진행 중에 사건을 맡게 되면서 패소의 쓴맛도 봤지만, 올해 7월 14일 대법원에서 극적으로 판세가 뒤집혔다.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한 지 9년 만에 나온 결과였다.

전과 11범인 서진환은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2년 8월 20일, 서진환은 성폭행 대상자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어슬렁대던 서진환은 오전 9시 30분쯤 유치원 통학버스에 네살, 다섯살 자녀를 태운 뒤 집으로 들어가던 주부 A씨를 발견했다. 서진환의 성폭행 시도에 A씨는 온몸으로 저항했고, 서진환은 A씨의 급소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서진환은 A씨를 살해하기 13일 전에도 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중랑구 면목동의 한 주택에서 주부 B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A씨가 사망하기 전 경찰이 서진환을 검거했다면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에 유족들은 2013년 2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자 2심을 진행 중이던 공익 변호사는 법무법인 지평에 도움을 요청했다. 2016년 3월쯤부터 프로보노(공익변론) 활동으로 소송에 참여한 지평은 국회와 보호관찰소, 경찰서 등의 자료를 모아 국가가 어떻게 서진환을 검거하지 못했는지부터 살폈다.

박 변호사는 “보통 변호사는 의뢰인으로부터 사실관계를 전달받고 사건을 파악한다”면서 “그러나 중곡동 살인사건의 경우 유족들은 범죄 피해자로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 유족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없어 직접 사실관계부터 파악해야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는 듯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지평은 우선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파악하기 위해 국회 속기록을 들여다봤다. 서울 보호관찰소, 중랑경찰서 등 보호관찰과 수사 관련 기관에 사실 조회 촉탁 신청을 하고, 문서 제출 명령도 다각도로 신청했다.

지평은 서진환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중랑경찰서가 ‘첩보 수집 대상자’인 서진환을 ‘자료보관 대상자’로 잘못 지정해 재범 방지를 위한 예방 활동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또 재범 위험이 높은 대상자를 추적 관리하는 법무부 교정 당국이 월 3회 이상 전자장치 부착자를 대면 접촉해야 하지만, 서진환을 담당한 보호관찰관은 2012년 7월 16일 이후 A씨와 B씨를 향한 두 차례 범행이 벌어질 때까지 한 달 넘게 서진환을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다는 점도 알아냈다. 보호관찰관은 매일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소견을 입력해야 하는데, 한 달 치를 몰아 기록한 사실도 파악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기관의 대처가 소홀했던 것은 인정되지만, 경찰과 교정 당국의 조치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정도로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박 변호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이 부족했는지부터 파악하고 법리 등을 보강했다.

특히 71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와 약 400쪽의 상고이유 보충서를 충실하게 작성하는데 상당한 역량을 쏟았다. 지평은 ‘재범의 가능성이 상당한 범죄자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주의 의무’ 등 국가의 의무를 짚고, 유사한 사건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외국 판례 등도 제시했다.

지평은 또 공무원 각각의 행위 과실 정도를 따져 국가의 손해배상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개별 공무원의 과실을 총체적으로 묶어 하나의 행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법원은 유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박 변호사는 “공무원이 국가의 손, 발과 같은 역할을 하고 총체적인 국가를 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항소심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증거를 확보해 둔 것이 상고심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지평은 중곡동 살인사건과 비슷한 ‘공익 활동’에 참여하는 변호사의 비율이 94.38%에 달하는 로펌 중 하나다. 지난해 변호사 1인당 평균 공익활동 시간은 35.08시간이었다. 지평은 산하 공익변호사 단체인 사단법인 두루와 손을 잡고 장애 인권, 아동·청소년 인권, 사회적경제, 국제인권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