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최대 6300억원. 작년 12월 16일,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상고심에서 승소한 근로자측이 돌려받게 될 소급분 추정액이다. ‘신의칙 적용’을 아예 배제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온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사실상 사법부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총 3편의 기획을 통해 그간의 통상임금 판례 흐름을 정리하고, 최근 대법원 판단의 한계와 비판에 대해 분석한다. 앞으로 기업의 노사간 임금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대법원의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판결이 신의칙 적용 가능성을 ‘극도로 좁혔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법조계에선 사법부가 법적 판단이 아니라 “경영 및 재무적 판단까지 하게 됐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온다. 대법이 단순히 경영상의 어려움을 넘어 경영 상태 악화 가능성까지 예측해야 한다는 구체적 요소를 명시했다는 점에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사실상 신의칙 항변을 배제하겠다는 지침을 확정했다고 보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향후 경영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까지 예측해야 신의칙을 적용하겠다는 취지인데, 기업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항변한다. 외부 환경이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 향후 리스크를 정확히 예견하고, 극복 가능성을 진단하는 것은 사법부가 아닌 기업 당사자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즉, 사법부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판단하는 칼자루를 쥐게 됐는데 이는 과도한 권한이라는 지적이다. 대법 노동법실무연구회에서 활동한 법무법인 화우의 홍성 변호사는 “명확한 신의칙 기준 없이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법원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라며 “사법부가 (해당 기업이) 경영상 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걸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냐”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법관의 자의적 기준이 반영될 여지도 커졌다. 수도권 법원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경영상 어려움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는 논리는 사실상 재판부의 주관적인 기준을 개입하게 해준 판단”이라며 “만약 항공사가 추가 법정 수당을 지급한 뒤 예상치 못한 감염병이 퍼져 수요가 줄게 된다면 그 기업의 존폐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일례로 재판부가 ‘일시적인 경영 악화’라고 판단해 파기환송한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사건을 보면, 금호타이어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대법은 작년 3월 “근로자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회사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금호타이어는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라 3000여명에게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면 2133억원의 채무가 가중된다. 지난해 현금 보유액이 1000억원에도 미치치 못하는 상황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2020년 8월 기아차 근로자 3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노조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칙 위반이라는 사측의 주장을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반면 쌍용차와 아시아나항공, 한국GM 사건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을 인정해 근로자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했다.

이른바 ‘신의칙 판단 시점(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조선업계처럼 대외환경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업종의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라며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신의칙을 판단하는 것과 좋지 못할 때 판단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에서 법조계 내부와 학계 등에선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대법 판결이 신의칙 법리 중 하나인 ‘모순행위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권리자의 권리 행사가 종전의 행동과 모순되는 경우, 그러한 권리 행사는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노사 간 어학 수당, 식대, 교통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정기상여금은 제외하기로 합의한 후 이를 보충해주기 위해 회사가 임금을 7% 올려줬는데, 나중에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넣어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는 “노사 간에 확정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무엇인지, 자발적으로 합의가 된 것인지, 특정 수당을 통상임금에서 빼는 대신 근로자측이 어떤 것을 얻었는지 등을 기본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만약 회사가 추가로 금액을 지급해 재정적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생긴다면 보호를 해주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