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 둔 지난 22일 저녁 8시, 야경 명소로 유명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도심의 빌딩 숲과 어우러진 랜드마크가 내뿜는 불빛에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저마다 야경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멀라이언이 쏟아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순간 놀랐던 가슴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오미크론 확산세에 결국 여행안전권역(VTL·Vaccinnated Travel Lane) 항공편에 대한 신규 티켓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 직후였다.
‘국제중재 허브’인 싱가포르를 취재하러 오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입국 허가서와도 같은 VTP(Vaccinnated Travel Pass) 관련 정책이 시시각각 바뀌는데다, 관련 정보가 국내에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삼수 끝에’ 싱가포르에 입국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입국한지 하루 만에 VTL 항공권 신규 발행 중단이 결정된 셈인데, “신의 한 수”라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조금 더 지체했더라면 아예 입국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눈 뜨면 신고 또 신고”...강도 높은 ‘1일 1검사’
그럼에도 싱가포르에서는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즐비하고, 유명 레스토랑은 일찌감치 전부 예약 마감됐다. 비즈니스가 활발한 싱가포르는 호텔이 많기로 유명한데, 전망이 좋은 베이프론트 지역 호텔은 대부분 남는 객실이 없는 상태다.
싱가포르 현지 로펌에서 근무하는 케리스 탄(Charis Tan) 변호사는 “클라이언트와 식사할 만한 곳을 알아봤지만 이미 풀 부킹된(full-booked) 상태”라며 “연말을 앞두고 있어 유명 레스토랑은 남는 자리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칠리크랩 요리가 유명한 팜 비치 씨푸드 레스토랑 역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말레이시아에서 관광을 위해 입국한 한 여성 손님은 “크리스마스를 즐기려고 친구들과 싱가포르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싱가포르가 그동안 24개국에 VTL을 허용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일 1검사’라는 강력한 검역방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VTL을 통해 (코로나 음성일 경우) 일부 국가의 여행자에 대해서는 무격리 입국을 허용했다.
대신 창이공항에 발을 닿는 순간부터 출국하는 시점까지 여행자에게 ‘코비드 테스트’ 의무를 부과한다. 출장 등 비즈니스 관련 업무에 바쁘더라도, 매일 검사를 받고 결과를 제출하는게 1순위가 된 셈이다.
◇”입국 3일째 또 PCR검사...자가 테스트, 매일 해야”
싱가포르 당국의 ‘해외입국자 관리’는 매우 체계적이다. 기자가 지난 21일 밤 10시쯤 창이공항에 도착하자, 당국은 VTP 관련 조건을 충족했다는 뜻으로 동그란 모양의 초록색 스티커를 붙여줬다.
선결제 해둔 PCR 테스트를 받은 후 택시를 이용해 해외입국자가 머무는게 가능한 호텔로 이동했다. 이후 ‘음성 결과’를 받을때까지 격리했다. 다만 결과는 신속하게 나오는 편이다. 통상 5시간 정도 걸리는데, 밤 비행기로 도착한 경우에는 아침이 되기 전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검사 결과,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더라도 또 다른 의무(Mandatory Test)가 이메일로 날라온다.
입국한지 3일째, 7일째 되는날 가까운 ‘퀵 테스트 센터(Quick Test Center)’에서 PCR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다. 센터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는 2·4·5·6일째에는 자가 진단 키트로 테스트해야 한다. 또 그 결과를 정부 당국이 보낸 링크에 직접 입력해 신고(Declaration)하도록 돼 있다. 체류기간이 일주일이 채 안되는 단기여행자로서는 코로나 테스트 시간에 따라 개인 일정을 조정할 수 밖에 없다.
이밖에도 싱가포르엔 트레이스투게더(Trace Together)가 있다.
만약 자가격리 해제 후에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에 들어가려 한다면, 반드시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QR코드와 같은데, 백신 접종확인서(영문)를 제출하고 VTP를 발급받은 해외 입국자라면, 앱에서 자신의 프로필을 등록하고 활성화할 수 있다.
◇오미크론, 지역내 확산 우려에...”VTL 신규발급 중단”
이처럼 해외 입국자에 대한 철저한 방역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기준, 싱가포르 오미크론 발생 건수가 최고치(65건 해외유입·6건은 현지감염)를 기록했다. 이에 방역당국은 선제적 방어에 나섰다.
우선 신규 VTP 발급부터 제동을 걸면서 입국 빗장부터 높였다.
싱가포르 당국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23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VTL 항공편 및 버스편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키로 했다. 다만 이미 항공권을 구입해 싱가포르 현지에 있는 여행객들에겐 VTL 적용에 따른 무격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또 싱가포르 민간항공청은 내년 1월 21일 이후에도 싱가포르 입국 VTL 항공편의 판매량을 기존 쿼터의 50%로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해외 입국자와 접촉하는 공항 직원들에 대한 방역 및 검사 조치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는 “택시 승강장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근로자들은 더 많은 개인 보호장비를 착용하게 될 것”이라며 “항원 신속검사 대신 PCR 등록 정기검사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