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남의 아들을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가둬 결국 숨지게 한 40대 여성이 지난 10일 오후 충남 천안동남경찰서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연합뉴스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

지난해 6월, 여행용 가방에 갇힌 채로 학대를 받다가 사망한 9살 A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A군은 이 말을 끝으로 4시간 반 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꽃을 채 피우지 못한 ‘아홉살 인생’은 그 후 이틀만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살인·특수상해·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이 확정된 계모 성모(43·여)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A군의 삶은 2019년 초 아버지와 함께 집에 찾아온 성모씨를 만나면서 악몽으로 변했다. 성씨는 이혼한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을 데리고 A군이 살던 충남 천안시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 중 A군과 연령대가 비슷했던 성씨의 아들(당시 10살)이 장난감을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지자 이에 불만을 품고 A군에 대한 학대를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A군의 아버지가 직장 문제로 1~2주에 한 번 꼴로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성씨의 무자비한 폭행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심지어 성씨는 A군을 ‘거짓말쟁이’로 몰아 친자녀는 물론 친부마저 A군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A군은 점차 가정에서 설 곳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2020년 6월 1일 결국 사달이 났다. 성씨는 이날 오후 12시경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안방 내부 옷방에 있던 여행용 가방을 꺼내 A군을 가뒀다. 가방의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71.5cm, 너비 30cm 였다. 키가 132cm, 어깨 너비가 34cm인 A군이 한껏 웅크린 자세로 누워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B군은 이 곳에서 3시간 30분을 버텼다. 그 사이에 성씨는 친자녀들에게 한 시간마다 가방의 방향을 바꾸어주라는 지시만 남기고 점심 약속을 위해 외출했다. 돌아온 뒤 성씨는 자녀들로부터 ‘A군이 가방 안에서 소변을 봤다’는 얘기를 듣자 잠시 풀어줬다. 그러나 더 작은 여행용 가방에 A군을 가두고 학대를 계속했다.

견디다 못한 A군은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성씨는 “정말 숨이 안 쉬어져? 거짓말 아니야?”라고 추궁하며 학대 강도를 높였다. A군이 갇힌 가방을 밟고 올라서기까지 했고, 자신의 친자녀 2명도 함께 올라와 뛰도록 했다. 당시 몸무게가 23kg이었던 A군은 여행용 가방 속에서 성씨와 그의 친자녀 2명 등 총 160kg 가량의 무게를 견뎠다.

이후에도 40분간 방치되던 A군은 결국 의식을 잃었다. 성씨는 뒤늦게 119를 불렀으나 A군은 이미 심정지 상태가 온 뒤였고, 이틀 후인 6월 3일 질식에 의한 저산소성 뇌손상 및 그 합병증 등으로 사망했다.

1심 재판에서 성씨 측은 고의가 없었다며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성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에서는 오히려 형량이 징역 25년으로 상향됐다. 또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명령 10년과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명령까지 추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오랜 시간 밀폐된 여행가방에 들어가 웅크린 상태로 있다면 호흡이 곤란해지고 탈수나 탈진이 올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며 “자신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불확정적으로라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성씨 측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9세의 어린 아이에 불과하던 피해자가 좁고 캄캄한 공간에서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공포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