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들어 11월까지 드러난 코스닥 상장사들의 횡령·배임 규모가 지난해 하반기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공시가 연말에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코스닥 기업의 횡령·배임은 남은 한 달 동안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주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코스닥 상장사들의 부정행위가 가뜩이나 부진한 코스닥 지수를 더 억누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형 성장주 위주로 이뤄진 코스닥시장 특성상 횡령·배임 이슈는 상대적으로 시장 신뢰 하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지난달까지 공시된 ‘횡령·배임 혐의 발생’ 보고서는 총 16건, 10개사로 집계됐다. 금액으로 치면 1231억원 규모다. 작년 하반기(2023년 7월 1일~12월 31일) 14건(11개사), 805억원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보고서는 2건 늘고 금액은 426억원(53%) 급증했다.

통상 기업의 횡령·배임 사실은 기업이 감사보고서 작성을 위해 연말 결산을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11월 기준으로 봐도 이미 작년의 횡령·배임 규모를 넘어섰지만, 올해 남은 기간 관련 공시가 더 쏟아질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와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 횡령·배임 규모가 가장 큰 코스닥 상장사는 유압용 관이음쇠 제조기업인 테라사이언스(073640)다. 7월 16일 전 대표이사와 사내·외 이사들의 337억원 규모 업무상 배임 혐의가 발생해 회사가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노블엠앤비(106520)(212억원), 디에이테크놀로지(196490)(202억원), 한국유니온제약(080720)(194억원) 등도 전·현직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업무상 배임·횡령을 저지른 혐의를 받아 관련 내용을 공시했다.

코스닥시장 참여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투자 심리가 한껏 취약해진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횡령과 배임 공시마저 늘어나고 있어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주와 성장주 중심인 코스닥시장은 대형 우량주가 많은 유가증권시장보다 투자자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횡령·배임 증가가) 투자자의 코스닥시장 이탈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올해 하반기 들어 지난달까지 코스닥 지수는 840.44에서 678.19로 19.3% 급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12.2% 내린 것과 비교하면 낙폭이 더 크다. 7월 초 10조원을 넘겼던 코스닥 일일 거래대금은 지난달 1일 5조원대까지 쪼그라들기도 했다. 특히 하반기 기타법인과 기관 투자자들은 9332억원, 5232억원 규모로 코스닥 주식을 순매도했다. 개인이 1조3205억원, 외국인이 1421억원을 사들이며 시장을 지탱했다.

횡령·배임 증가는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도 찬물을 뿌릴 수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밸류업과 관련해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확대 등을 자주 언급하는데, 기본 전제는 상장사에 대한 시장의 신뢰”라며 “잦은 횡령·배임으로 기업가치와 시장 신뢰가 흔들리면 장기적으로 밸류업 동력 자체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횡령·배임 금액이 ‘자기자본의 5%(자산총액이 20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의 경우 3%) 이상’이면 주식 거래가 정지된다. 만약 임원에 의한 횡령·배임액이 ‘자기자본의 3% 이상 또는 10억원 이상’이면 한국거래소는 해당 기업을 상대로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하고,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상장 폐지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경우 소액주주는 돈이 묶인 채로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 금전적 피해가 불가피하다. 임원급 이상의 횡령·배임은 기업이 자체적인 전산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적발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자발적인 내부통제에만 기대지 말고, 외부 규제 보완도 병행해야 기업이 경각심을 느낄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액 횡령 사건에 대해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 엄벌에 처할 수 있는 법제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미국처럼 내부고발 유인을 위해 포상금을 부정 금액에 비례해 대폭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