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자산운용이 82%가 넘는 손실률을 기록 중인 독일 부동산 펀드의 만기를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일단 시간을 벌었으나, 2개월도 남지 않은 대출 만기까지 대주단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6일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이날 서울 영등포구 와이피센터에서 진행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 수익자 총회 결과, 의결권 있는 수익 증권 가운데 72.56%가 펀드 만기 연장에 찬성했다. 이로써 펀드 만기는 올해 10월 31일에서 2025년 10월 31일로 2년 연장됐다.
수익자 총회가 열린 배경은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가 투자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TRIANON) 빌딩의 가치가 크게 낮아져서다. 트리아논의 감정 평가액은 2018년 10월 펀드 출시 당시 6억7500만유로(약 8700억원)에서 지난 8월 4억5300만유로(약 6600억원)로 32.9% 하락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줄었고, 금리 인상까지 이어진 여파다.
기초자산 가치를 반영해 산출되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의 기준가(클래스 A) 역시 지난달 3일 847.45원에서 520.33원으로 내려간 뒤, 현재는 149.07원까지 떨어졌다. 기준가 하락에 따라 펀드 수익률도 설정 이후 -82.4%로 추락했다.
부동산에 투자해 임대료로 배당금을 챙기고, 부동산 매각에 따른 추가 수익까지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큰 손실에 분개했다. 이날 수익자 총회에서 “부동산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투자했는데, 이 정도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 “부동산 가치가 살아날 수는 있느냐”, “손실이 커지기 전까지 이지스자산운용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책임져라” 등의 성토가 이어졌다.
펀드 만기가 연장됐으나, 이지스자산운용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작지 않다. 당장 환 헤지(Hedge·손실 위험 방지) 계약도 끝나면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성이 커졌다.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 펀드가 환 헤지 계약을 체결한 SC은행은 기준가가 최초 기준가보다 50% 이상 하락해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며 전날 조기 종료를 통지했다.
대주단 설득도 과제다.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파생형)가 트리아논 빌딩을 매입할 때 사용한 대출 만기가 오는 11월 말 돌아온다. 대주단을 설득해 대출 만기를 연장하면 부동산 시장이 나아졌을 때 트리아논 빌딩을 매각할 기회가 생긴다. 반대로 대출 만기 연장이 되지 않으면 펀드는 부동산 소유권을 잃고, 대주가 부동산을 경매에 부쳐 처분할 수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펀드 만기가 연장된 점을 지렛대 삼아 대주단과 대출 만기 연장 등 리파이낸싱(Re-financing) 방안을 협상할 계획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현지 기준금리 인상으로 상업용 부동산 거래 시장이 크게 위축됐지만, 고객 보호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부동산 매각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대주단과 대출 연장 관련 협의도 성실히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지스자산운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 부동산 펀드가 투자한 건물의 가치가 훼손된 경우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펀드 만기는 줄줄이 돌아올 예정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해외부동산 공모펀드 판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된 해외부동산 공모펀드는 총 14개로 판매 규모는 1조478억원이다. 이 가운데 5835억원(57.8%) 규모의 펀드가 2024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온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는 최근 6개월 펀드 수익률이 -31.95%다. 2019년 4월 결성된 이 펀드는 벨기에 브뤼셀 부동산의 장기 임차권에 투자했다. 매입가는 1억4530만유로(약 2000억원)였으나, 지난해 말 기준 감정평가액은 1억3250만유로(약 1900억원)로 8.9% 하락했다. 이 펀드의 만기는 2024년 6월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11호는 기준가가 지난달 24일 1342.57원에서 26일 821.1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최근 한 달 수익률도 -35.8%로 하락했다. 2017년 7월 결성된 이 펀드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상업용 빌딩(Park Center 1)에 투자했다. 오피스빌딩 자산평가액이 자산감정평가액이 올해 8월 말 기준 2억34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20.1% 낮아졌다.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11호의 만기는 1년 3개월여 남았지만, 대출 만기가 2024년 7월에 돌아온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대출 만기 전에 부동산을 매각할 계획인 가운데 부동산 가치가 회복되지 않으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여러 방안을 검토하는 상황”이라며 “금리가 진정되는 시점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