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구리와 리튬 등 핵심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자원 전쟁’에 뛰어든 가운데 구리 가격이 지난달 연저점을 찍고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구리 생산국 1위인 칠레가 광업세를 47%까지 올리면서 구리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구리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이달 들어 상승 전환하며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구리선물(H)’은 이달 들어 6.46%,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구리실물’은 5.55% 올랐다. 지난달까지 6%대의 하락세를 보이던 구리 ETF가 이달 들어 상승 전환한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구리 ETF가 반등한 이유는 구리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구리 선물 3개월물은 한 달간 8% 넘게 급등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도 7월 인도분 구리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3.89달러로 같은 기간 9.22% 상승했다.

연초 구리 가격은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약세를 보였다.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소비의 60%를 차지하는 나라다. 구리 가격은 지난달엔 톤(t)당 7910달러로 연저점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올여름 ‘슈퍼 엘니뇨(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은 기간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로 구리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구리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칠레와 페루는 1~2위의 구리 산지로 글로벌 구리 공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며 “엘니뇨발(發) 폭우가 발생하면 생산이나 운송이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이미 페루는 폭우로 공급 차질을 겪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구리 공급이 크게 감소한 점도 구리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전일 LME 구리 창고의 재고가 약 3만톤으로 지난 2021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가용 재고가 급락하면서 구리 가격은 7주 최고치인 8711달러에 도달하는 등 오름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도 구리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 구리 생산국 1위인 칠레가 광업세를 크게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칠레는 연간 8만톤 이상의 구리를 생산하는 회사에 최고 47%의 세율을 적용한다는 광업세·로열티 개혁안을 추진했다. 수정안에는 5만톤 이상의 구리를 판매하는 회사에 구리 판매당 종가세 1%를 부과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광산 기업의 영업이익률에 따라 8%에서 26%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한다.

고찬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칠레 광산의 로열티 법안은 장기적으로 전 세계 구리 공급량을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험 요인”이라며 “기업들이 광산에 자금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구리 광산의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요 측면에서는 하반기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 구리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연구원은 “중국의 구리 재고 추이를 과거 5년 치에서 보면 현재 최저치에 달한다”며 “중국이 경기 부양책과 함께 인프라 혹은 부동산 건설 등을 추진하면 구리 수입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 여지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올해 미국이 기준금리를 또 인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지면서 구리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면 산업 금속, 에너지 등 경기에 민감한 자산들의 가격이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