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2월 25일 16시 41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LS그룹이 계열사 기업공개(IPO)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작년 상장 예비심사 철회 후 올해 재도전에 나서는 LS이링크를 포함해 5개 이상의 그룹사가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가운데, 법 개정 취지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LS는 계열사 상장이 국내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LS 한 관계자는 “중복 상장 대한 우려는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한다”면서도 “다만 계열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고금리 상황에서 가장 좋은 투자 재원 마련 방법은 IPO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상장을 통해 성장성 높은 해외 기업을 투자하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25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LS그룹 지주사의 고손자회사인 에식스솔루션즈(Essex Solutions)와 LS일렉트릭의 자회사 KOC전기는 최근 국내 주요 증권사에 입찰제안서(RFP)를 배포하고 주관사 선정 절차를 시작했다. 두 곳 모두 3월 초 내로 프레젠테이션(PT)과 최종 주관사 선정을 마치고 상장 준비에 속도를 올린다는 계획이다.
에식스솔루션즈는 ㈜LS→LS아이앤디→사이프러스인베스트먼트→슈페리어에식스(SPX)→에식스솔루션즈로 지배구조가 만들어져 있고, KOC전기는 ㈜LS→LS일렉트릭→KOC전기 순으로 지배하고 있다.
에식스솔루션즈와 KOC전기는 증권사에 보낸 입찰제안서에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 중 적정한 상장 시장 선정, 적정 공모가격, 재무적 투자자(FI)를 위한 구주매출 규모 등을 포함해 중복 상장에 대한 대응 방안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등 잇단 계열사 상장에 중복 상장 이슈를 의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LS그룹에는 지주사인 ㈜LS를 포함해 모두 8개(가온전선, LS일렉트릭, LS네트웍스, LS에코에너지, LS머트리얼즈, LS증권, LS마린솔루션)의 상장사가 있다. 지주사와 직접적인 지분 관계는 없으나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해 LS그룹으로 묶이는 E1과 예스코홀딩스를 포함하면 총 10개에 달한다. LS이링크와 LS이브이코리아 등 상장을 준비 중인 계열사를 포함하면 15개를 훌쩍 넘긴다.
업계에서는 LS그룹의 다수 계열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상장을 추진하면 중복 상장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중복 상장으로 기존 상장사의 가치가 훼손되는 디스카운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는 “LS그룹이 증권사로 보낸 입찰제안서에 중복 상장과 관련한 요청이 들어 있다”며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중복 상장 이야기에 상당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에식스솔루션즈와 슈페리어에식스 ABL(SEBAL)은 쪼개기 상장에도 해당한다. 에식스솔루션즈와 SEBAL은 미국 전선회사 슈페리어에식스의 자회사다. 지난 2023년 통신사업 부문을 분리해 SEBAL을 설립했고, 이듬해 권선사업 부문을 분할해 에식스솔루션즈를 출범했다. 모회사에서 분리한 통신사업과 권선사업 부문을 따로 상장하려는 것이다.
지주회사인 ㈜LS를 기준으로 보면 에식스솔루션즈와 SEBAL은 고손자회사에 해당한다. 업계에서는 고손자회사 두 곳이 동시에 상장을 추진하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행위 제한 규정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보유할 경우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규정한다. 단 에식스솔루션즈와 SEBAL는 외국 자회사이기 때문에 이 규정은 피해 갈 수 있다.
국내 로펌에서 공정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해당 규정의 취지는 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해서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라며 “다만 이는 국내 법인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미국 법인인 에식스솔루션즈와 SEBAL이 규제 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LS그룹을 향한 눈초리가 따갑지만 계열사 상장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외형 확장 과정에서 외부 자금을 유치할 수밖에 없었고, 투자자의 엑시트를 위해 상장이란 창구를 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장을 준비 중인 계열사 대부분은 자산운용사·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약속한 기한 내에 상장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에식스솔루션즈는 작년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IPO)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KCGI컨소시엄으로부터 약 2950억원을 모았고, KOC전기는 작년 5월 LB프라이빗에쿼티(PE)로부터 지분 51%를 592억원에 인수하면서 3년 내 상장을 약속한 바 있다.
LS 측은 에식스솔루션즈와 SEBAL의 상장을 위해 법인을 분할한 게 아니라, 이미 쪼개진 법인을 인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LS 측은 “미국 법인을 직접 인수하기 위해 중간지주사 형태로 사이프러스인베스트먼트와 슈페리어에식스 법인을 설립한 것”이라며 “두 회사는 실질적인 기능이 없기 때문에 고손자회사가 아닌 손자회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지주사의 중복 상장 이슈는 LS그룹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앞서 HD현대마린솔루션과 LG CNS 등도 중복 상장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IBK투자증권이 발간한 ‘국내 시장 중복 상장 증가, 중복 상장 활용 IPO 투자 전략’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증시 중복 상장 비율은 약 18%에 달한다. 일본과 대만 미국, 중국의 중복 상장 비율은 각각 4.38%, 3.18%, 0.35%, 1.98%다.
중복 상장이 주가 할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이익 더블카운팅 때문이다. 이익 더블카운팅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돼 있을 때 투자자들이 동일한 기업가치를 두 번 계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모회사의 기업가치는 자체 사업 부문과 자회사 지분 가치로 구성되는데, 자회사의 가치가 독립적으로 평가되면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를 할인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중복 상장에 따른 연간 지배주주 순이익 기준 더블카운팅 비율 평균은 11% 수준”이라며 “이머징 비교 국가인 대만, 중국과 비교하면 국내의 중복 상장 비율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