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 앞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디딤돌·버팀목대출 등 정책대출의 쏠림을 경계하는 발언을 해 금융권이 또 들썩이고 있습니다. 금융 당국의 수장이 정부가 주도하는 서민 금융 상품의 공급을 문제 삼은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장은 지난 14일 임원 회의에서 “은행 자체 재원 정책자금대출이 2022년 이후 180.8% 증가하는 등 가계대출 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은행의 기회비용 등을 감안할 때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산 쏠림 리스크 및 건전성 악화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금융 당국은 그간 정책대출이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상승의 주원인이란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어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정책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인 국토교통부와 부처 간 엇박자로 비칠 수 있는 점을 우려해 발언에 신중을 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해 9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정책대출 공급 규모를 줄일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국토부와 소통 중”이라며 “당국과의 입장 차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랬던 금융 당국이 이 원장의 입을 빌어 국토부의 정책대출 공급 확대에 제동을 건 것은 올해 공급 규모를 놓고 국토부와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어섭니다. 국토부는 지난해(55조원) 수준으로 정책대출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공급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증가 규모를 올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망치 3.6~4.0%)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는 60조원 안팎입니다.

은행들은 이 원장의 정책대출 제동을 내심 반기는 모습입니다. 정책대출은 은행이 정부를 대신해 저금리로 대출을 내주면, 정부가 일반대출 금리와 정책대출 금리의 차를 보전하는 구조입니다. 다만 전액 보전이 아닌 최대 0.99%포인트까지만 보전해 은행들은 정책대출 취급을 꺼리고 있습니다. 은행이 1%포인트가량의 이자 비용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반길 이유가 없는 것이죠. 지난해 12월엔 한 시중은행의 일부 지점이 정책대출 취급을 자체 종료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원장의 발언으로 정책대출 공급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나, 은행들은 혼란스러운 듯 합니다. 일단은 신중론이 우세한 분위기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면죄부를 주더라도 국토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일단 정책대출 공급 규모가 어느 수준으로 확정되는지 기류를 계속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