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올해도 금융감독원 출신 인사를 줄줄이 상임감사로 영입하고 있다. 금감원 출신이 감사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직무에 적합하다는 것이 은행 측의 설명이나, ‘전관예우’ 관행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액 연봉을 주고 금감원 출신을 임원 자리에 앉혀도 횡령·배임 등 금융 사고는 끊이지 않아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지난 26일 신임 상임감사로 이성재 전 금감원 보험담당 부원장보를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이 전 부원장보는 1988년 은행감독원(금감원 전신)으로 입사해 보험영업검사실장, 보험준법검사국장, 은행준법검사국장, 여신금융검사국장 등을 역임했다.
신한은행도 임시 주주총회에서 김철웅 금융보안원장(전 금감원 소비자권익보호 부원장보)를 상임감사 후보로 선출했다. 김 원장은 1991년 한국은행에 입사한 뒤 2007년 금감원으로 자리를 옮겨 일반은행국 국장, 불법금융대응단 국장, 분쟁조정2국 국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금융보안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임기가 만료되는 국민은행 김영기 상임감사 역시 금감원 출신이다. 김 상임감사는 은행담당 부원장보를 역임 후 금융보안원장을 지낸 뒤 2022년부터 국민은행 상임감사를 맡았다. 신한은행 유찬우 상임감사도 금감원에서 부원장보를 지낸 인물이다.
다른 시중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나은행 민병진 상임감사, 우리은행 양현근 상임감사, 고일용 농협은행 상임감사 역시 금감원 요직을 거쳤다.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상임감사도 금감원 출신이 독식하고 있다. JB금융지주는 지난 26일 김동성 전 금감원 부원장보를 감사본부장(부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토스뱅크의 현 상임감사는 박세춘 전 금감원 부원장이다.
은행들은 금감원 출신만큼 감사직에 적합한 인물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직무 연계성을 무시할 수 없긴 하나,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금융 당국 ‘로비 창구’나 ‘방패막이’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관계자는 “당국과 소통을 기대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긴 하다”며 “내년이 책무구조도 도입 첫해인 만큼 금감원과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한 감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전관예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이권 카르텔’ 척결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지난 7월 임직원들에게 “금감원 출신 금융사 임직원들과의 사적 접촉이나 금융회사 취업에 있어서도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한 치의 오해도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금융사로 자리를 옮긴 ‘금감원 전관들이 사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현직 금감원 직원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등의 행위가 카르텔로 비치는 것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이 감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임감사는 회계와 감사 업무의 총책임자로, 부정이나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고, 최근엔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건까지 적발돼 견제 기능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금융은 상임감사와 별도로 경영진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전담 조직인 ‘윤리경영실’을 새로 만들고, 차장검사 출신 이동수 변호사를 영입했다.